[특집]남북경제 상생의 실험대, 개성공단을 가다
[특집]남북경제 상생의 실험대, 개성공단을 가다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6.01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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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늘면 이것이 통일 지름길"

1만5천명 노동자 주야 비지땀...2000만평 개발 야무진 청사진
하루 12차례 분주히 물류 왕래...군사적 긴장감도 조금씩 완화


400평 남짓해 보이는 드넓은 2층 작업실이 한 가득 미싱소리로 요란하다. 지난달 29일 국내 속옷업계 최초로 ‘made in 개성’ 시대를 연 패션내의 전문업체 (주)좋은 사람들(대표 주병진) 개성 1공장 현장 모습이었다.

‘사그락 사그락’하는 미싱소리 만큼 공장은 활력으로 넘쳐 있었다. 본격적인 생산 6개월을 맞은 개성 1공장은 남측에서 파견된 직원 8명과 북측에서 고용된 440명 등 총 448명이 근무하고 있다.

남측 방문객들의 시선도 아롱곳 하지 않고 원단을 이리 저리 헤집는 여성동무의 솜씨가 보통 손놀림이 아니다. 미싱에 부지런히 원단을 밀어 넣으면서도 표정만큼은 어느 때 없이 밝아보였다. 새로 신축한 건물이어서인지 작업장 분위기도 어느 사무실 못지 않게 깔끔했다. 

▲ 국내 속옷업계 최초로 개성 공장에 진출한 (주) 좋은 사람들 현지 작업장 표정. 북측 여성 직원들이 재봉틀 라인에 앉아 부지런히 옷감을 처리하고 있다.
원단은 라인을 따라 제품생산, 상품 포장까지 일관 작업 순서에 따라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총 12개 라인에 설치된 300여대의 미싱이 쉴 새 없이 소리를 내는 순간, 어느새 완제품이 산뜻한 포장지에 담겨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분단이후 최초로 세워진 남북 상생의 협력 프로젝트인 개성공단이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60㎞ 1시간 거리, 북방한계선에선 불과 1.5㎞ 거리인 개성공단에 지금 남측 기업인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분단이후 최초로 경의선 남북 열차가 시험운행을 마친 가운데 해외 생산기지를 찾던 기업인들의 눈길이 차츰 개성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건부이긴 하지만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에 대한 길이 트인 것도 기업인들의 발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됐다. 저임의 노동력으로도 얼마든지 한국산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등으로 표류를 거듭하던 개성공단이 기업인들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금단의 땅 개성에 남북 상생의 첫 삽이 뜨인 것은 지난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측 아시아태평화위원회 간에 개성에 총 2,000만평 개발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면서부터다.

개성공단 개발계획은 총 3단계로 진행될 예정이다. 약 2,200억원이 소요될 예정인 1단계 100만평 부지 조성 개발은 지난 2003년 6월 착공에 들어가 올해 안 마무리 될 예정이며, 이어 2단계 250만평, 3단계 550만평의 추가개발이 뒤 따를 전망이다. 3단계 총 공사가 마무리 되면 공장용 부지만 800만평에 이른다. 광주의 가장 큰 공단인 하남산업단지가 180만평인 것을 감안하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 개성공단 1단계 부지조성 개발 대상지 100만평 전경. 개성공단 1단계 공단 부지는 지난 2003년 6월 착공에 들어가 올해 안 마무리 될 예정이며, 이어 2단계 250만평, 3단계 550만평의 추가개발이 뒤 따를 전망이다.
지난 2004년 5월 15개 기업에 2만8,000평의 시범단지가 첫 분양된데 이어 지난 2005년 8월 1차단 분양(5만평, 24개 기업), 올해 4월 53만평의 추가분양이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시범단지에는 현재 15개 기업이 입주해 정상가동 중이며, 24개 업체에 분양된 1차단지에도 현재 8개 기업이 본격 생산을 시작했다. 나머지 기업도 지금 한창 건물 신축에 막바지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생산이 본격화 되면서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도 지난달 25일 1만5천명을 돌파했다. 북측 노동자수는 지난 2004년 12월 255명으로 출발, 05년 12월 6,013명, 지난해 12월 11,160명으로 처음 1만명을 넘어선데 이어 지난달 5월 6개월 만에 50%가 증가, 1만5천명까지 돌파한 것이다. 올해 100만평 1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최대 500여개 기업, 약 7~10만명 규모의 신규 일자리가 생길 예정이라는 것이 개성공단 관계자의 얘기다.
개성공단이 이렇게 기업인들의 호감을 끄는 것은 무엇보다 유리한 입지여건을 꼽을 수 있다. 서울과 60㎞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불과한데다, 특히 향후 경의선 철도를 이용할 경우 선박을 통해 독일 함부르크를 가는데 27일이 소요된 것에 반해 TCR(중국횡단철도)은 7일, TSR(시베리아 횡단철도)을 이용하더라도 10일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유럽시장이 훨씬 가까워지는 것이다.

저임의 풍부한 노동력도 매력적인 포인트다. 주 48시간 기준 월 최저임금이 50달러에 불과한데다 임금 인상률도 전년도 월 최저임금의 5% 이하로 못 박아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심양지역 월 최저임금이 주 44시간 기준 100~200달러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의 1/2수준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지난 4월 27일 ‘개성공업지구 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투자 안정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남측과 북측 직원들이 한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개성공단은 이미 훈풍이었다. 같은 한 회사의 직원 신분으로 아침 출근길을 나선 뒤 하루 8~10시간을 보낸 뒤 다시 똑 같이 공장 문을 나서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아직 남과 북측일 뿐이라는 것 밖에는 없었다.

최윤규 좋은 사람들 개성1공장 생산부장은 “섬유봉제업은 남쪽에서도 3D업종에 속하는데 노임을 감안하면 전망은 괜찮다고 본다”며 “남측과 북측이 서로 많이 알게 되다보면 통일도 더 가까워 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5명의 직원 중 김명옥(25)씨 등 2명이 북측 여성 직원인 우리은행 개성지점도 마찬가지였다. 전문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자, 연연환 우리은행 개성지점장은 “금융 용어에 대해 북측과 상이성은 있지만 이해력이 빠르다”며 “남측 여성 이상 잘 한다”고 칭찬이다. 개성공단 각종 지원시설, 입주업체 작업현장 곳곳이 이런 장면들이었다.

▲ 개성공단으로 들어갈 물품을 가득싣은 현대아산 차량이 경의선 도로 남북 출입사무소를 통해 개성으로 들어가고 있다.

하루 12차례 남북 통관 시간이 열리는 경의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에는 그때마다 개성공단을 오가는 현대아산 화물차량들로 기나긴 차량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아직 출입국 절차가 까다롭고 통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흠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분단 59년의 상징인 판문점이 있는 곳이자, 불과 몇 년전까지도 금단의 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아직 경비초소 군인이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하루에도 수십차례 남북을 오가는 기업인들과 차량들도 더 이상 그들의 눈에도 신기한 현상은 아니다.

서울에서 한달음인 개성공단에는 지금 남북을 겨눈 총구대신 민족공동번영의 기운이 한층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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