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배우고 배워서 남 주자
즐겁게 배우고 배워서 남 주자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7.03.29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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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대안 교육현장 ⑤]강진 늦봄문익환학교

▲ 늦봄 문익환학교 전경.
공동체 생활 위해 스스로 중재위 꾸려 갈등 조정
중국, 캄보디아, 독일 등 통일대비 해외 현장학습
 

늦봄문익환 학교를 방문한 지난 6일 오전 나무와 황토, 돌을 이용해 옹기종기 지어진 건물 사이사이 몇 명의 아이들이 구역을 나누어 잡초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 아이에게 수업시간일 텐데 왜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성훈(가명. 14)이는 “중재위원회가 내린 결정에 따라 어쩔 수 없다”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관계자에게 다시 물으니 “성훈이가 동기에게 심한 말로 상처를 줘 중재위원회에 회부돼 내려진 벌”이라고 귀띔했다.

4명의 학생대표들로 꾸려진 중재위원회는 지난해 초 아이들의 자발적인 제안으로 시작된 일종의 ‘행정심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구다. 길잡이로 불리는 교사들은 이 과정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이들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한다.

▲ 학생들이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인 노작활동은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하는 것은 물론 심신수련에도 큰 몫을 한다.
김창오(오솔길.이름을 대신해 부르는 별칭) 길잡이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징계수위를 결정할 때보다 친구들이 결정한 내용이라 쉽게 승복하는 편이다”라고 중재위의 장점을 설명했다. 주로 친구에게 인신모독 성 발언을 하거나 때리고 괴롭히는 아이들이 중재위에 회부되며 묵언, 노동, 친구들 양말 빨아주기 등의 벌이 내려진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학기 초 질서가 잡히기 전에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공동체 생활의 지혜를 스스로 터득해가고 있었다.

문 목사 정신 기리는 중고 통합형 대안학교

늦봄학교는 지난해 3월 개교한 중·고 통합형 대안학교다. 지역인사 123명이 늦봄평화교육사업회(사)를 만들어 기금을 출연하고 학교를 설립했다. 지난해 40명의 신입생에 이어 올해 31명의 2기 신입생을 맞았다. 전직교사와 학원강사 등으로 구성된 11명의 길잡이와 12명의 도우미(특기적성 강사)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늦봄학교는 고 문익환 목사의 정신을 기려 생명과 영성, 자율과 공동체, 통일과 평화를 교육이념으로 삼고 있다.

▲ 학교에서 전남 해남 땅끝까지 50km를 걸어서 도착했다.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각오를 다지고 있는 늦봄학교 학생들.다시 걸어서 돌아올 때까지 한 명의 낙오자고 없었다고..
자립생활에 필요한 의학과 노작활동, 영성 생활을 위한 철학과 고전 수업, 역사와 통일학습 등이 기본 교과 외에 진행된다. 특히 매일 한 시간씩 의무적으로 하는 노작활동은 학교 소유의 텃밭과 논을 이용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심신의 균형을 일깨우는 데 필수적인 시간이다.  

전국에서 유래가 없는 6년제 과정은 1~2년은 중학교, 3~4년은 고등학교, 5~6년은 집중 진로지도 및 인턴십 과정으로 진행된다. 아직은 미인가학교라 검정고시를 봐야 학력인정이 되며 교육부의 지원이 없어 납부금만으로 운영이 된다. 입학시 300만원의 기부금을 내고 매월 50~60만원의 납부금을 형편에 따라 낸다.

늦봄학교만의 독특한 커리큘럼으로는 해외이동수업을 빼놓을 수 없다. ‘통일시대를 이끌 민족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취지에 맞게 2개월 동안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문화와 역사를 배운다.

올해 2학년들을 대상으로 4월부터 6월까지 중국을, 다시 2학기에 3개월 코스로 캄보디아를, 4년차에는 2개월 여정으로 독일을 각각 방문한다.

기숙사 신축 위해 후원공연도 계획

통일 후를 대비한 이러한 연계교육은 6년제 편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학교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한 학년에 40명씩, 6년이면 240명을 수용해야 한다는 계산인데 지금까지는 큰 무리가 없지만 장차 기숙사, 교실 등의 부족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재원마련을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먼저 문 목사의 자제인 영화배우 문성근 씨를 중심으로 후원공연과 전시회 등을 기획 중이고 기숙사 신축을 위한 ‘벽돌 한 장 기부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 지난 10일 31명의 새내기를 신입생으로 맞았다. 성적에 상관없이 건학이념에 동의하고 학부모, 본인의 의사가 있어야 입학이 가능하다.
김 길잡이는 “학교가 개교하기 전 허허벌판에 불과했을 때도 학부모들이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 주었다”며 “다소 어려움은 있지만 뜻이 있는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고 계신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며 말했다.    

김 길잡이는 마지막으로 “대안학교가 공교육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학부모들이 왜 아이들을 공교육에 보내지 않고 대안학교에 보내는지부터 먼저 생각해 봐야할 것”이라며 “사회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학교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즐겁게 배우고 배워서 남 주자’는 늦봄학교 교가의 한 구절처럼 배움의 뜻을 안고 찾아온 71명의 아이들은 왕따와 학교폭력 없는 스스로의 ‘천국’을 일구어 가며 학교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었다.

 “가장 멋진 타임머신을 탔어요”
[인터뷰]지난해 으뜸일꾼 양현웅(16)군

   
 
  ▲ 지난해 으뜸일꾼 양현웅(16)군  
 
전북 전주가 집인 현웅이는 늦봄학교에 오기까지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 중학교를 두 번이나 옮겨 다녔고 또래 아이들 하는 대로 하자면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현웅이는 늦봄학교를 입학했다. 중학 과정부터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를 몰랐어요. 계속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도록 싫었고 괜시리 짜증만 나고 남는 시간은 PC방에서 대충 때우고…”

이렇게 고등학교를 가면 뭐하랴 싶었다. 의미 없는 일과가 또 다시 되풀이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했다.

이런 현웅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늦봄학교 얘기를 꺼냈다. 현웅이에게는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가장 멋진 방법으로 시간을 되돌렸어요.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거든요. 지금의 생활에 100% 대만족입니다.”

같은 반 아이들보다 나이는 조금 많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의미 없이 보낸 날들을 생각하면 오늘 있는 이 자리가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웅이에게 일반학교와 늦봄학교 선생님들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물었다.

“그건 비교를 못하죠. 일반학교 선생님들은 제 인식범위 안에 아예 없었거든요. 잘못하면 무조건 호통부터 치거나 대꾸를 하면 반항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학교 선생님이었다면 우리학교 선생님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차근차근 대화로 풀려고 하고 그러다보면 금방 오해가 풀려요.” 모르긴 몰라도 마음의 병을 안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현웅이를 상상하는 것보다 해맑게 웃을 줄 아는 지금 현웅이의 모습이 훨씬 좋아보였다.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인 현웅이는 친구들의 추천으로 지난해 2학기 때는 으뜸일꾼(학생대표)으로 뽑히기도 했다.덕분에 일반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하는 영광(?)도 안았다.

어땠느냐는 질문에 현웅이는 “예산 액수가 천만 단위가 넘어가 솔직히 실감이 안 났지만 학생이 운영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아직은 꿈을 못 찾아 고민 중이라는 현웅이는 “중요한 결정인 만큼 신중히 생각하고 싶다”며 “늦봄학교가 나에게 해답을 줄 것”이라고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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