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왕 김일
박치기왕 김일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6.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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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흔하지 않던, 60~70년대 낯설지 않은 풍경이 있었다.

길을 가던 많은 사람들이 전파사 앞과 만화가게, 다방에 모여 환호와 웃음, 아쉬움의 탄식을 동시에 터트리며 일상의 피곤함을 달래는 오락.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던 문화가 존재했다. 이러한 문화의 중심에 프로레슬링과 박치기왕 김일이라는 국민적 영웅이 있었다.

박치기왕으로 유명했던 김일씨가 26일 낮 12시17분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향년 77세. 고인은 국내 스포츠에 이렇다 할 스타가 존재하지 않았던 60~70년대에 국민적 스타이며 동시에 국민적 영웅이었다.

프로레슬링이 벌어지는 날이면 사람들은 텔레비전앞에 모여 호랑이에 삿갓과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입은‘박치기왕’김일에 환호했다. 손에 땀을 쥐며 텔레비전을 보던 국민들은 김일 선수가 상대의 반칙에 피를 흘리면‘박치기’,‘박치기’하며 연호하였고 김일이 박치기로 상대편을 쓰러트릴 때 환성을 질렀다.

고인은 1929년 전남 고흥군 거금도에서 태어나 당시로서는 거구(1m80cm)를 자랑하며 호남 씨름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씨는 역도산의 내용을 여수에서 선원들에게 들은 후 역도산의 제자가 되기위해 일본으로 밀항한다.

경찰에 잡혀 1년간 고생하다가 역도산의 보증으로 출옥한 후 제1기 역도산 문하생이 되어 프로레슬링에 입문한다. 63년 역도산이 괴한의 흉기에 찔려 숨진해에 아픔을 딛고 그해 12월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김씨는 80년 은퇴할 때까지 3000여 회 경기를 치렀고, 세계타이틀을 20차례 방어했다. 고인이 팬들 앞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지난달 잠실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 특별 시구자로서 휠체어를 탄채 공을 던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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