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으로 돌아가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4.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간시평]정규철 (국제투명성기구 광주전남본부 공동대표)
머지않아 무등산 지공너덜에도 철쭉꽃이 만개할 것이다. 바위틈에서 추위를 이겨낸 나무들이 하나 둘씩 꽃망울을 터뜨리면 산자락은 말갛고 앳띤 소녀의 얼굴로 바뀐다. 산을 타면서 꽃구경을 하려면 아무래도 장불재를 넘어서 규봉암으로 가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4월 하순부터 5월 초순 무렵이 절정이기 때문이다. 산꾼들이라면 당연히 창령 화왕산이나 지리산 바래봉을 떠올리겠지만 사람의 공력을 들이지 않고 자생하는 철쭉의 군락지로는 몰라서 그렇지, 무등산이나 근교의 백운산만한 곳도 흔치 않을 것이다. 벚꽃이 지고난 후에 피는지라 산에 들면 신록과 풀냄새가 싱그럽고, 햇빛은 따스해 숲 속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떡갈나무나 후박나무 위에 송화가루가 내려앉으면 물오른 나무들도 수줍음을 탄다. 산새소리인지 골짜기의 물소리인지도 구분이 안 된다. 무등산에 앉거나 선 바위들은 북악산이나 인왕산처럼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지 않고 장삼(長衫)을 걸친 도인이 좌정한 모습처럼 검푸른 기상이 넘쳐난다. 무돌뫼의 제일경인 규봉이 동면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면 화신도 졸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지 성큼 성큼 소걸음질이다. 산꾼들이 흥에 겨워 야호! 소리지르다가는 산지킴이들한테 금수가 놀란다고 야단맞는다. 무등산이 시인 묵객의 붓 끝에 처음 오른 것은 고려 때 김극기(金克己)라는 분의 규봉(圭峰)이라는 시이다.

기이한 그 모습 이름 짓기 곤란터니 / 올라와 내려보니 만상(萬象)이 발아래라
바위 꼴은 마치도 비단을 마르잰 양 / 봉우리의 형세는 규옥(圭玉)을 쪼은 듯이
즐거이 노닐며 티끌 자취 가리니 / 그윽한 거처는 도정(道情)을 더해주네
어이해야 세상 그물 훨훨 내던지고서 /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생(無生)을 배울런가


정상에 우뚝 솟은 바윗돌이 마치 비단을 마름질하여 뽑아 세운 듯 하다고 읊고 있다. 옛 선인들의 강산유람에는 멋과 풍류가 따랐던가 보다.

근래에 전문산악인이 늘면서 취향도 다양해졌다. 여름이면 물 맑은 계곡을 낀 산, 가을엔 단풍, 겨울철에는 설경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서 산행길에 나선다. 경제성장에 따른 여가 시간이 늘면서 휴일이면 산을 찾는 인구 또한 격증하는 추세다.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등산객들로 산은 가을이 아니더라도 문자 그대로 천자만홍이다.

산적적 수잔잔이라는 말은 이제 옛 일이 되고 말았다. 괜히 알지도 못하면서 산짐승이 어쩌고 하지만 눈 덮인 겨울산을 올라 본 분들은 알 것이다. 심산유곡에 인기척이 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비둘기나 까마귀들이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모른 척하면 어찌나 보채던지. 바위위에 모이를 가져다 놓으면 순식간에 새들이 모여든다.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서 기회적절하게 변신을 꾀한다거나 제 배만 불리려고 대립각을 세우지도 않는다. 그냥 지껄이고 까불면서 의좋게 먹는다.
산행을 하다보면?잠시 한 발짝 물러서야 할 때가 있다.

기어이 끝장을 보겠다고 막무가내로 덤비다가는 공멸의 위기에 내몰릴 수도 있다. 정글의 법칙은 사람으로서 세상사는 지혜가 아니고 자연 섭리의 한 모습일 뿐이다.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뻔뻔스런 강도짓”으로 지탄 받으면서 고립에 빠져있는 모습이?이와 다르지 않다.

한 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젠 진정 자연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더라도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사회일각에서 '희망제작소'라는 걸 만들어 보겠다고 서두르고 있는 걸 보면서 자연스러움은 탐욕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의 산야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민들레나 무등산에 자생하는 춘란은 언제보아도 해맑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차가운 샘물을 찾는 노루나 까투리처럼 우리의 가슴에도 한가닥 시원한 물줄기가 샘솟았으면 좋겠다. 자연 속에서 사특함을 멀리할 수 있는 기상을 배울 일이다.

/정규철 (국제투명성기구 광주전남본부 공동대표)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