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연구자의 정체성 위기
지역연구자의 정체성 위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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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김대성 행정학강사
어느 선배가 이야기도중 작심한 듯 내뱉었다. 수많은 지역담론에 정작 '지역'은 없다고. 그의 의도는 이른바 '문화중심도시론'에 대한 것이었지만,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중앙과 지역, 그리고 인적 외연을 잇는 담론연합의 전선에서 지역이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는 불만으로 들렸다. 또한 그가 점하고 있는 담론적 위치를 직감했다. 그는 문화관련 전문담론에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인 셈이다.

그래서 지역 정체성을 둘러싼 담론이 있었는가를 따져본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나 지금 내 답은 '없었다'이다. 지역의 주도권 언급에 앞서 지역담론의 존재여부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의 주요 화두인 광산업과 문화중심도시, 그리고 J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제대로 된 '언어게임'이 있었는가. 지역발전 관련, 수 많은 연구용역 보고서를 아무리 뒤집어 봐도 찾을 수 없다.

앙꼬없는 찐빵?

행정 항해사가 조타하는 지역호의 항로는 지역 정책연구에서 시작된다. '나만이 옳다'는 자세를 견지한 지자체 수장들의 소영웅적 태도도 알고보면 지역 연구자들의 논리적 주장을 각색한 것에 불과하다. 더 자세히 파고들면, 역설적으로 지역연구자들의 논리는 지자체 고위관리자들의 평소 지론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지자체 수장은 이러한 주장들을 어떤 식으로 종합해서 설득력 있게 포장하느냐는 정치적 능력을 가질 뿐이다.

여기서 나는 지역연구자들의 '능력'과 '태도'에 딴지를 걸고 싶다. 필자가 이 지역 발전 청사진을 담은 많은 연구보고서에 대해 '짜집기 기술 종합세트'라고 주장한다면 과장일까.

우선, 각종 연구보고서는 행정기관에서 제공한 통계표의 나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통계자료를 통한 과학적 근거의 제시라기보다는 쪽수 채우기에 급급한 흔적이다. 또한 급하게 동원한, 숙성되지 않는 외국어들과 타지역 벤치마킹 사례는 어찌나 많은지. 그런데 정작 중요한 지자체 정책과제는 볼품없다. 몇 개의 설익은 아이디어의 포장으로 눈을 흐린다.

지역정책에 대한 지역연구자들의 담론 생산능력과 더불어 그들의 태도는 더욱 문제다. 연구용역 발주자의 의도에 '충실한 작품'은 자신들을 '짜깁기'라는 도구적 기술자로 전락시킨다. 나아가 도구적 기술자나 연구지식 장사꾼들은 연구대상에 대한 깊은 해석적 노력을 포기한다. 필자는 연구를 특정 사실과 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적 잠재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지역발전 연구결과는 너무도 단순한, 상식적인 결론만을 도출한다. 해답을 정해놓고 복잡한 용어로 정당화시켜줄 뿐이다.

짜깁기 기술의 현장보고서

지역연구자의 도구적 지식의 활용, 제한된 해석적 담론생산 능력은 일차적인 내부과정에 속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공서비스의 주체인 주민 또는 시민들과 대화를 통해 연구결과가 타당성과 신뢰성을 얻어야 한다. 그렇지만 부실한 연구결과는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

대신에 공청회, 보고회, 간담회, 여론조사 등 형식적인 절차를 선호한다. 몇 시간 이런저런 비판을 받다가 망각의 강을 건너면 그만이다.

이러한 담론적(discursive) 혹은 숙의적(deliberative) 과정의 부재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정치적 대리인인 연구용역 발주자의 주장을 정당화시켜주지만 그 주인인 주민들에게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역 연구자들의 정체성 위기가 제기된다.

다소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나 영국의 경험주의자 데이비드 흄(Hume)의 언명을 패러디해 이런 주장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나온 지역 연구보고서를 모두 내버려라' 지금껏 그 속에는 구질구질한 조급함과 피해의식, 피폐한 지식용어들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비판하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

/김대성 행정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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