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인플레이션
‘시민’의 인플레이션
  • 이정우 기자
  • 승인 2006.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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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소의눈]이정우 편집장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당선작과 관련하여 '랜드마크 land mark'라는 말이 크게 쟁점이 되고 있다.

지표 아래로 가라앉은 구조를 띠고 있는 전당 당선작의 특성상 "도시를 상짚대표하는 랜드마크 기능이 약하다"는 것이 광주시를 비롯해 광주예총 등 보수적인 문화예술단체 및 일부 시민들의 주장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랜드마크는 '조형성'과 동일시되고 있다. 건물이라면 마땅히 웅장하게 '보여져야'한다는 것이다.(이하 '조형규모 진영')

당선작가 우규승씨와 당선작을 지지하는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 진영의 생각은 다르다. 랜드마크는 보여짐으로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경험함으로서'도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당선작은 '경험'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다. 당선작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입장은 "도청 본관 건물이 광주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80년 5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청 본관 건물을 광주의 랜드마크로 삼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지어질 전당 건물은 본관을 '억압'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이하 '생태역사 진영')

서로 다른 입장을 내 세우고 있는 양 진영이지만 '시민참여'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은 다르다. 조형규모 진영은 과거형이고, 생태역사 진영은 미래형이다.

오늘의 당선작이 결정되기까지 시민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았으므로 우규승씨의 설계는 원점에서 제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조형규모 진영의 '시민참여'이다. 이들은 동시에 대규모 공연, 전시가 가능한 '장르별 전용공간'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생태역사 진영은 그 결정과정이 형식요건을 갖추었고 투명하게 진행되었으니, 현재의 당선작을 인정한 바탕에서 향후 광주시민을 비롯한 내외국인들이 전당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뜻에서 '시민참여'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형규모 진영의 '시민참여' 논리다. 까닭은 지난 역사에 비추어 그 발언이 느닷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관(官)의 의견에 충실히 따르고, 그들과 함께 많은 일들을 벌여온 조형규모 진영이 갑자기 이 시점에서 '시민참여'를 들고 나오니 자못 그 속내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5·18 관련 단체들의 '침묵'이다. 당초에 옛 전남도청 자리에 문화전당을 짓겠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5·18 역사 유적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게 이들 단체들의 단호한 입장이었다. 이 같은 입장이 무시될 경우 '시민과 함께' 반대투쟁을 벌이겠다는 말도 이어졌다. 그런데 막상 5·18 유적을 거의 건드리지 않고, 뿐만 아니라 그 유적들(도청 본관, 민원실, 상무관 등)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당선작이 나왔는데 조용한 까닭은 무엇일까. 세상 물정에 어두워서인지, 작금의 당선작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일어날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생태역사 진영의 '진영'이 궁금해진다. 간단하게 보면 민예총이나 문화연대 같은 비교적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는 단체에 적을 두고 활동하는 이들로 파악된다. 하지만 전당과 관련된 설명회 등 이런저런 자리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광주시민'으로 소개하곤 한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특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는 만큼 '개인의견'임을 강조하기 위해 본인들이 몸담고 있는 단체를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일련의 논의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진짜시민'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모두들 시민참여를 이야기하는 데 그 내용은 다 제각각이다. 더군다나 시민참여를 강조하는 그 말은 정작 시민들을 향하지 않고, 추진기획단이나, 문광부 등 '윗선'에만 집중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차츰 시민이라는 말이 지겨워지기까지 한다. 제안하나 하고 싶다. 앞으로는 전당과 관련한 논의에서 그냥 '내 의견' '우리 단체 입장'이라고 말하는 게 어떨까. 그게 정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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