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수도와 광주영화제
문화수도와 광주영화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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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임종수(자유기고가)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 중에 영화에 대한 것이 있다. 코흘리개 시절, 광주공원 노천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동네 아이들과 함께 몰려다녔는데, 이렇다할 볼거리도 없던 시절 영화를 통해 이국적인 풍물들을 접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뒤에서 아이들이 모래를 뿌리는 바람에 머리가 온통 범벅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영화 보는 재미만은 막지 못했다.

광주국제영화제 예산이 시의회에서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시 예산이 줄었기 때문에 광주영화제는 그야말로 존폐의 기로에 서있는 셈이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동안 영화 한 편 제대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영화제를 양적인 성과 따위로 재단하겠지만, 영화제 기간동안 상영스케줄을 손에 쥐고 상업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주옥같은 명화들을 맘껏 즐겨왔던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행사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

영화를 통해 일상의 고단을 털어 내고 가슴 한 켠에 침잠해 있던 젊은 날의 열정과 낭만을 되살려낸다. 또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영화 역시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케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깊이 있게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더욱 소중한 것은 한창 자라나는 감수성 깊은 아이들에게 미래의 꿈과 무한한 가능성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최근 개봉되어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영화 ‘킹콩’은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첫사랑 같은 영화다. 아홉 살 때 처음 극장에서 고전 ‘킹콩’을 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갖게 되었다는 잭슨은, 언젠가 자신의 힘으로 이 거대한 고릴라를 부활시키겠다는 소망을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있었다. 후일 ‘반지의 제왕’으로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피터 잭슨은, 마침내 거대한 판타지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그의 오랜 꿈을 이루었다.

장 뤽 고다르와 함께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거장 프랑수아 트뤼포는 사생아였다고 할 만큼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났는데, 학교와 가정에서 소외당한 트뤼포에게 극장은 현실로부터의 탈출구인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주는 천국과 같았다. 외부세계와 차단된 영화 속에서 그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이 때 그가 섭렵한 ‘까르네’, ‘쿠루죠’, ‘르노와르’ 등의 영화들은 그의 영화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영화제 기간동안 신바람을 일으키며 영화에 탐닉하는 젊은 관객들 중에 제2의 임권택과 김기덕, 박찬욱을 꿈꾸는 미래의 영화 천재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들은 영화에 굶주린 나머지 매년 부산이나 부천, 전주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광주영화제가 얄팍한 비난여론과는 관계없이 그들의 꿈을 키워주는 소중한 산실이자 살 맛 나는 축제인 것이다. 실제로 광주국제영화제가 창설된 이후 시내 각급 학교에 많은 영화동아리가 만들어지고 지금도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농부가 가을의 수확을 바라보며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듯이 문화 역시 먼 훗날의 결실을 기대하면서 돈을 투자하는 미래투자라고 할 수 있다. 광주영화제가 정체성이나 조직구성원 등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원대한 문화수도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좀더 넉넉하고 긴 안목으로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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