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요
나는 가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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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대한민국] 기은조(자유기고가)
“나는 가요. 랄랄랄라 우리 말 랄랄랄라 우리 글 배우러 가요.”

여기는 도쿄의 제 2조선학교, 1학년 교실. 이곳에서는 ‘나는 가요’ 노래가 한창이다. 조선학교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배우는 이 노래는, 언뜻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왜 이곳에 있는가. 그렇게 꽤나 무거운 화두를 건네고 있었다.

얼마 전 모 방송에서는 도쿄의 제 2조선학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 땅에 강제로 끌려와, 광복이 되고도 돌아가지 못한 조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진 탄압 속에서도 조선민족임을 잊지 않기 위해, 조선민족답게 살기 위해, 조선학교를 세운다. 그리고 그들의 피와 땀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일본 땅에서 ‘조선’이라는 뿌리를 일깨워주고, 지켜주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조선학교의 구석구석에 카메라를 댄다. 훌륭함은 사소한 곳에서부터 발견되는 법. 한쪽 구석에서 아이들이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는 장면이 보인다. 이긴 사람은 환호를 지르고, 진 사람은 “아이쿠!” 라 장단을 넣으며 즐겁게 놀고 있다.

어라? 지면 ‘에이~’라는 탄식을 내뱉는 우리의 놀이풍경과는 다르지 않은가. ‘아이쿠’라는 추임새는, 뭐랄까. 더 흥이 나면서, 승부에 연연해하지 않는 너른 마음이 배어 있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함께’ 즐기는, 어울림의 장에, 잠시 놀란다.

또 다른 장면. 국적이 어디냐는 물음에, 3학년 두 아이는 서로 다르게 대답한다. 한 아이가 “우리는 왜 국적이 다르나?” 라고 묻더니, 골똘히 생각한 끝에 답을 내온다. “조선이든, 한국이든 우리는 한민족이잖아.” 아이는, 꼭 맞는 답을 얻었다는 듯 시원하게 웃는다.

교장선생님은 ‘우리민족이 중심’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국적을 기록한 적도 없고, 통계를 내본 적도 없다 한다. 그리고 6.15공동선언 이후, 조선학교는 통일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더 바빠졌다. 최근에는 교과서를 전면 개정해, 북측에 대해서만 공부했던 예전과 달리, 남측과 북측 모두를 공부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내년’이면 통일이 될 것이라 입 모아 이야기 한다.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순간,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2년 전인가. ‘예비교사, 통일시대를 준비하자’는 주제로 신문을 낸 적이 있었다. 현장교사들의 통일교육, 예비교사가 준비할 것들 등을 담아, ‘통일교육’에 대한 화두를 던진 지면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TV 앞에 선 나는 멍해 있다. 지금 나는 통일시대를 준비하고 있는가. 아이들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는가. 자신이 없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다큐멘터리가 이제 다 끝나간다. 조선학교, 그 곳에는 민족교육이 있고, 민족문화가 있었다. 서투른 조선말이 더없이 예쁘고, 곱디고운 한복과 아이들의 몸짓이 너무도 잘 어우러진다. 그리고 아이들 뒤에서, 조용히, 그리고 꿋꿋이 민족을 지켜나가는 교육자의 모습은, 잔잔한 울림으로 전해오고 있었다.

60분간의 담담한 다큐멘터리와의 만남도 이제 끝이 났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뜨거운 걸까. 아이들이 부른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나는 가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왜 가야 하는가. 통일시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그곳에서 오래오래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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