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준 칼럼] 강정채의장은, 말하라!
[정병준 칼럼] 강정채의장은, 말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6.15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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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올해 지역혁신특성화사업 심사에서 전라남도가 탈락한 것이다. 대도시를 제외하면 전라남도만 유일하게 탈락했다. 그 결과가 나온 지 열흘이 지났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록 아무도 말이 없다. ‘왜 우리를 탈락시켰느냐’는 항변도 없다. ‘내 잘못이요’ 라는 자책의 소리도 없다. 갑자기 사위(四圍)가 조용하다. 그 많던 말들이 한 순간에 다 어디로 갔을까.

사실은 말이 너무 많아 탈이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이 아니었다. 해서는 안 될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라남도 추천 프로젝트 심사를 하면서, 공무원들은 전라남도 고위층의 뜻이라며, 특정 프로젝트 선정을 당부했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라면,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이다. 기능성식품 프로젝트의 결점들이 드러난 뒤에도 전라남도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전남 서부권의 소형선박업체들을 지원하는 레저선박육성사업에 왜 반대하느냐는 질문에는, ‘J-프로젝트와 겹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J-프로젝트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정해지지도 않았다는데, 도대체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소위 재심사를 주도한 광주․전남지역혁신협의회 강정채의장은 재심사에 혁신협의회의 ‘명예’를 걸었다고 한다. 설마 그런 말을 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전라남도가 의회에 공식문서로 제출한 내용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또한 경솔한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역혁신’은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다.

노무현정부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느냐는 별론(別論)으로 하더라도, 이 시기 ‘지역이 혁신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이론(異論)이 없다. 지방권력이 지역현안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던 구태(舊態)에서 벗어나, 여러 주체들이 역량을 한데 모으자는 것이다. 그 ‘시대정신’이 선정프로젝트 번복을 위해 동원되었다. ‘혁신’이라는 말, ‘명예’라는 말의 지독한 오용(誤用)이다.

지역특성화사업 탈락이 몰고 올 문제는 단순히 지원예산 30억 원을 날린 데 그치지 않는다. 중앙의 심사위원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 전남의 실상을 보여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어떻게 이런 프로젝트가 추천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혹시 중앙의 심사위원들이 전라남도 추천프로젝트를 보고 전남의 ‘지적수준(知的水準)’을 평가하지는 않았을까. 내심(內心)으로 ‘전라남도가 낙후되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평가를 하진 않았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부끄럽고 답답하다.

김대중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광주, 전남을 지원해주고 싶어도 지원해 줄 아이템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일했던 박준영 전남지사도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 제출된 그 어떤 프로젝트도 이번에 추천된 기능성식품 육성사업보다 형편없진 않았을 것이다.

▲ 바이오메디의 연구소가 있다는 영암의 주소지 건물. ⓒ시민의소리 자료사진 주관기관 연구소가 시골 주택 빈 창고이고, 연구원이 석사학위 소지자 2명 뿐 이라느니, 사업에 공익성이 없다느니 하는 것은 오히려 사족(蛇足)에 속한다. 프랑스에서 기술을 도입해야 추진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데, 기술도입에 대한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아직 프로젝트가 성립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프로젝트에 국가예산 3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추천했다. ‘아이디어’가 없다고 한탄하던 박준영 지사가 이끄는 전라남도가 한 일이다. 참 아이러니고, 불행한 역사의 되풀이다. 그런 되풀이가 전라남도 ‘낙후의 이유’라면 이제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할까. 그런 작업에 광주 전남지역혁신협의회가, ‘명예를 걸고’ 앞장섰다. 지방권력의 폐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지역혁신협의회가 권력의 독단을 뒷받침한 것이다. ‘강정채의장이 먼저 재심사를 하겠다고 나섰다’는 전라남도의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박지사의 요청이 있었다’는 게 강의장의 설명이고 보면, 아무래도 이야기는 도청 쪽에서 먼저 꺼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더라도 들어야 할 얘기와 듣지 말아야 할 얘기는 가렸어야 했다. 강의장은 기능성식품사업의 문제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 프로젝트를 떨어뜨린 것은 잘한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래놓고 뒤돌아서서 재심사를 추진한 것이다. 이미 산업자원부 통보라는 공식절차까지 끝난 일, 재론할 이유가 없었다. 지역특성화사업의 1차 심사는 논의과정이 복잡하긴 했지만, 어떤 하자도 없는 결정이었다. 논의과정이 복잡해진 이유도 알고 보면 간단하다. 전라남도가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리고 몇몇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권력의 의지’를 뒷받침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의 존재이유인 ‘전문성’을 저버렸다. 오직 권력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그들에게 어떤 ‘열매’가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전문가로서 ‘명예’를 버렸다. 1차 심사는 그들과의 투쟁과정이었고, 힘겹게 지켜 낸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강정채의장이 이 모든 과정을 뒤집고 재심사에 나선 것이다. 강의장은 재심사를 결정한 것은 자신 혼자 결정이 아니라, 대표자회의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변명은 더욱 구차해 질뿐이다. 전라남도는 대표자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강의장 주도로 재심사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순수한 대표자회의의 결정이라면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어떻게 이런 발표를 할 수 있었을까. 재심사를 결정하는 5월 10일 대표자회의에는 편파적인 회의 자료가 제출됐고, 전라남도 관계자들만 참석해 일방적인 주장을 펴게 했다. 그래놓고 ‘대표자회의의 결정’이라고 우긴다면, 그 역시 당당하지 못한 일이다. 그는 편파적인 회의 진행으로, 공직자 뿐 만 아니라, 언론사사장, 의회 의장, 시민단체 대표까지 참여한 지역혁신협 대표자회의를 한낱 웃음거리로 만든 책임도 져야 한다. ▲ 지역혁신특성화사업 선정 특혜의혹과 관련 전공노 전남본부, 광주전남민중연대, 민주노동당 전남도당이 지역혁신협의회 회의가 열리는 금수장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이정우
지역혁신특성화사업에 대한 강총장의 대응을 놓고,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왜 ‘주관기관 변경을 추진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전라남도가 기능성식품육성사업을 무리하게 추천했을 때, 평가위원들은 주관기관을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개인기업 대신, 자체 기술로 사업을 추진 할 수 있는 공공기관이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전남대 생활과학대학이었다.

전남대 생활과학대학은 이번 심사에서 기능성식품사업과 비슷한 프로젝트를 제출했지만, 전남과 동시에 광주에서도 선정되어야 하는 초광역 프로젝트라는 이유로 선정대상에서 제외됐다. 전남대총장이기도 한 강의장은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관기관 변경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그가 하려고만 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지역사회와 전남대, 모두 좋은 일이었다.

강의장 책임 하에 치러졌다는 재심사에 전남대 생활과학대는 참여조차 할 수 없었다. 초광역 프로젝트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기능성식품사업은 재심사에서 상당부분 수정이 용인되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전남대 생활과학대에도 광역프로젝트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는 주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도 강총장이 밝혀야 한다. 만약 그 이유가 전라남도 지사의 압력(요청) 때문이거나, 혹은 대학시절 제자라는 기능성식품사업 대표와의 사사로운 인연 때문이라면, 강의장은 전남대를 발전시켜야하는 대학 총장으로서의 본분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의문투성이인 이 모든 과정을 이제 전라남도민도 알아야 한다. 낙후된 땅 전라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그 실상을 이제 도민도 알아야 한다. 일을 그르쳐 놓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강의장은 이제 손상된 지역사회의 명예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

그 내용에 따라 강의장이 지역혁신협의회 의장이나, 전남대 총장으로 계속 일하는 것이 과연 지역사회의 명예에 합당한 일인지에 대한 지역민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광주전남지역혁신협의회 특화발전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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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 2005-06-16 16:22:38
    공무원으로서 보기에도 말이 안되고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전과정이 의문투성이, 의혹투성이 입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처신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도지사와 강 의장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모름지기 대표자라하면 그만한 책임을 지녀야 하고, 명예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리욕심에 눈이 먼 사림일 뿐입니다.

    빛돌이 2005-06-16 11:29:59
    오핸만에 구구절절 옳은 소리 시원합니다.
    지역혁신협 인물들의 표정이 궁금하군요.

    정 선생님
    가슴속이 팍팍 뚫리는 글 자주 보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