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일사불란하게 공동 대응하는 전략적 활동도
매우 필요
호남에서 최근 두달만에 국정수행지지도가 절반으로 떨어진 것 같다. 그 틈을 타고 호남소외론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호남 현지의 분위기는 탯줄처럼 수도에 사는 호남사람들에게도 연결된다. 여론조사 지표가 그렇고 보니 소외가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어렵게 됐다.
균형발전 추진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당혹스럽고, 고통스럽기도 하다. 민원은 늘어 가는데 해결할 과제는 하나같이 쉽지가 않다. 같이 울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확신하건데 대통령도 이런 상황은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첫째가 의구심이다. 참여정부를 출범시키는데 호남이 주역으로서 자부심을 가졌는데 보상이 탐탁치 않다는 것이다. 전남도지사 사건 및 신일순대장 구속, 김혁규총리지명설 및 '영남발전특위'로 이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영남특혜’ 논란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대통령과 관계가 없거나 사실이 아니었다.
둘째로 호남이 인사에서 비켜서 있다는 불만이다. 일부는 과장이고 일부는 사실이라고 본다. 전체적으로는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정부 요직에서 호남출신 비율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정책결정을 할 때 호남문제가 화끈하게 해결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이것이 한 몫 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로 지역현안에 대한 배려가 적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정책결정이 고도로 논리적인 것이기에 무자르듯 딱 잘라 말하기 쉽지 않다. 호남 고속철, 무안공항, 농업개방 등은 지역민들의 불만의 요인이다. 반면 광주문화중심도시, 광양경제자유구역지정, 서남해안 복합관광단지 추진은 피부에 닿을 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서이지 애를 쓰고 있는 일이다.
잘했다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다. 민심이 변한 것은 다 이치가 있다. 정부는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 문제점은 과감히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그러나 호남이 기대를 버리지 않아야 되는 것은 대통령이 호남 보은(報恩)의 마음을 버린 것도 아니고, ‘동진(東進)’ 정책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넘치면 기울고, 비우면 채워지게 되어있는 것이 순리다. 지금은 옳고 그름을 따져 문제는 냉철하게 지적하되 일은 되게 하도록 전략적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대통령은 그간 지역균형발전의 원칙을 확고하게 밝히고 또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투명하게 하되 성과가 없는 일은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 국가경영자로서 자신의 원칙임도 분명하게 말했다. 호남에 대한 균형적 시각에서의 지원정책은 계속 될 것이지만 발전과 성장을 위한 구체성이 없거나 성과가 나지 않는 계획에 대해서는 냉정하겠다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첨단산업활성화, 동북아 관광허브, 공공기관이전 등 여러 지역 현안들을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제대로 추진해 보길 희망한다. 인사문제도 될만한 사람을 키우고 천거하고 일이 되도록 힘을 모아서 처리하자. 균형논리와 실사구시를 잘 결합하면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다.
호남의 낙후요인이 역사적으로 호남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불균등성장 정책 때문이기에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혁신을 두려워하고, 경쟁을 안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확실하게 될 수 있는 일에 통크게 도전해서 밀고 나가는 능력을 호남이 발휘해야 한다. 소극적 균형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구들끼리는 통하겠지만 국가전체로는 안통한다. 방어적 의존보다는 적극적 대응으로 나갈 때 얻을 것도 얻고, 지역의 자생력이나 발전속도도 빨라지게 될 것이다.
획기적으로 사고를 전환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 정치권과 자치단체, 기업과 대학,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일사불란하게 공동 대응하는 전략적 활동도 매우 필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더 믿어보자. 호남과 참여정부가 여기서 깨지면 이것은
‘공멸(共滅)’이 아닐까 한다. 호남은 참여정부를 달래고 채찍질하기도 하면서 ‘상생(相生)’의 길로 가야 한다. 지금 절망하기에는 너무 이른
때이다.
/김영집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정책전문위원 kyj@cwd.go.kr
나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고 노사모 활동도 했지만 지금은 노동당에 입당했다. 노무현 정권의 한계성을 느꼈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역동성을 노동당에서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