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충남의 한 초등학교장 자살사건이 발생하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일선학교 교장들은 물론이고 보수언론과 야당까지 합세한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전교조는 순식간에 '살인집단'으로 매도됐다. 사태의 진실은 아직 확인되기 전이었고, '진상확인이 먼저'라는
전교조측의 목소리는 '살인마'라는 충혈된 함성 속에서 너무도 작기만 했다.
이 교장은 시골공동체를 살리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001년부터 겸면초교 인근 초등학교들과 공동으로 치르고 있는 학교운동회도 그 가운데 하나.
"농촌인구가 줄다보니 학교운동회를 하면 지역 기관장의 숫자나 학부형들의 숫자가 비슷할 정도예요. 그래서 소규모 개별운동회를 합쳐, 아이들은 전통민속놀이로 어울리고 어른들은 돼지잡고 막걸리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거죠."
공문서에 빼앗긴 선생님을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전교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해야 교육개혁된다"
학교의 변화는 교육감이나 교육부장관이 아닌 학교장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교장들의 의식수준은 일선 교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지금 같은 승진제도로는 학교교육의 개혁이 어렵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세무서장, 경찰서장을 하는데 자격증이 필요하나요. 교장에게만 교장자격증을 요구하고 있어요. 국가가 교육을 통해 국민을 지배하려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비리 없이 교장 될 수 없는 게 현실이예요. 그러면서 전권이 교장에게 몰려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가 지적한 교육현장의 문제는 교사승진제를 비롯해, 교장과 일선 교사간의 구조화된 갈등, 교육내용과 행정 등 전분야에 걸쳐 망라되고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는 이들이 바로 전교조 선생님들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스스로 한국교총 소속이지만, 전교조에 대한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교육계의 최대 현안인 NEIS(네이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겸면초교는 NEIS작업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아니면 누가 아이들의 인권을 지키겠다고 나섰겠어요. 아이들은 미성년이예요. 교육부가 NEIS를 통해 부모동의도 없이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려는 거지요. 이걸 막자는 거예요. 교육부나 학교현장에서 전교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돼요."
전교조에 대한 신뢰의 밑바닥엔 이 교장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원죄의식'이 깔려 있었다. 89년 젊은 선생님들이 참교육을 외치며 거리로 내몰릴 때,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던 그는 '학교현장에 남아서 참교육을 실천해달라'는 동료 전교조 교사들의 말에 못이기는 척 하며 그들을 떠나보냈던 것이다.
그 후 14년이 지났고, 당시 선생님들은 학교에 돌아왔지만 이 교장은 아직도 "원죄가 없어질 수 있나"라며 스스로 고백하고 참회하고 있단다. 하지만 그는 원죄 이전에 한사람의 교사로서 유신시절 교육계비리를 비판한 글을 한 월간지에 연재해 청와대와 공안기관의 내사대상이 됐고, 이후에도 바른소리 때문에 늘상 학교와 교육청과 갈등을 빚어온 인물이기도 했다.
결국 어느 소속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두고 싸워왔다는 것이다. 현재 겸면초등학교에 보이는 모습들이 바로 이 교장이 38년 교직에 몸담으면서 쌓아온 교육철학의 반영인 셈이다.
"정년이 이제 두 해 남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놓고 가면 나머지는 후배들이 더 잘할 거라고 믿어요. 그들을 위해 오늘의 문제제기를 하고 필요한 자료를 모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