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마녀사냥에 제동건 '돈키호테 교장'
전교조 마녀사냥에 제동건 '돈키호테 교장'
  • 이광재 기자
  • 승인 2003.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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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남 곡성군 겸면초교 이천만교장

지난 4월 충남의 한 초등학교장 자살사건이 발생하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일선학교 교장들은 물론이고 보수언론과 야당까지 합세한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전교조는 순식간에 '살인집단'으로 매도됐다. 사태의 진실은 아직 확인되기 전이었고, '진상확인이 먼저'라는 전교조측의 목소리는 '살인마'라는 충혈된 함성 속에서 너무도 작기만 했다.

▲전남 곡성군 겸면초등학교 이천만 교장©김태성 기자 5월 들어 전국의 교장들은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며 전교조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을 때, 인터넷상에 글 한편이 돌기 시작한다. 전남의 한 시골 초등학교 교장이 신분을 '망각(?)'하고 교장단의 행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 그는 "명분도 없고 법적인 시비가 가려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순교자네 살인마네 하면서 사회를 호도하고 국민들의 분별을 왜곡시켜서야 될 일인가"라며"이전투구(泥田鬪狗)를 즉시 멈추고 다시 이성(理性)의 장(場) 학교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게다가 전교조에 대해 "그들은 참교육 투쟁 18년 동안 열정과 희생으로 진정한 순교자적 교육자 상을 이뤄냈으며 그 간난과 질곡은 아무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며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전교조측에게 그의 일갈은 '황야에서 들려오는 선지자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다른 교장들로부터는 '전교조 교장'이네 '돈키호테'네 하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전남 곡성군 겸면초등학교 이천만 교장(61). 그는 돈키호테와 선지자라는 두 얼굴의 주인공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25일 겸면초등학교를 찾았다. 학교 입구엔 대문을 매달 기둥조차 없었고, 대신 장승과 솟대가 먼저 손님을 맞았다. 운동장 바깥주변엔 일부러 심었다는 3천여 그루의 야생화가 자라고 있었다. 학교 현관입구 벽면엔, 교사(校舍) 전경과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대형 사진 두 장이 전부. 교무실과 교장실 벽에도 대개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월중 행사표'나 각종 일지세트 대신 그림 몇 점이 걸려 있을 뿐이었다. 교무실의 일일 조회도 없다. 일제와 군사정권시절의 권위주의적 '브리핑문화'라며 없앤 것이다. 교사들은 한 달에 두 번의 회의 외엔 교장선생님과 일상 속에서 만나고 얘기한다. ▲ 교무실과 교장실 벽에는 대개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월중 행사표'가 없다.©김태성 기자
물론 이같은 학교를 만든 중심에 이천만 교장이 있었다. 전교생 수가 64명에 불과한 이 작은 시골학교에 부임한 지 3년째. 이 교장은 "교사가 즐거워야 교육이 살고, 교사는 업무가 아닌 항상 아이들 곁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곡성군에 '교사공문서근절연구시범학교'를 자청하며, 공문서와 각종 행사들을 과감히 줄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교장은 시골공동체를 살리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2001년부터 겸면초교 인근 초등학교들과 공동으로 치르고 있는 학교운동회도 그 가운데 하나.

"농촌인구가 줄다보니 학교운동회를 하면 지역 기관장의 숫자나 학부형들의 숫자가 비슷할 정도예요. 그래서 소규모 개별운동회를 합쳐, 아이들은 전통민속놀이로 어울리고 어른들은 돼지잡고 막걸리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거죠."

공문서에 빼앗긴 선생님을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전교조를 대화 상대로 인정해야 교육개혁된다"

학교의 변화는 교육감이나 교육부장관이 아닌 학교장에서 시작된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교장들의 의식수준은 일선 교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지금 같은 승진제도로는 학교교육의 개혁이 어렵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세무서장, 경찰서장을 하는데 자격증이 필요하나요. 교장에게만 교장자격증을 요구하고 있어요. 국가가 교육을 통해 국민을 지배하려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비리 없이 교장 될 수 없는 게 현실이예요. 그러면서 전권이 교장에게 몰려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가 지적한 교육현장의 문제는 교사승진제를 비롯해, 교장과 일선 교사간의 구조화된 갈등, 교육내용과 행정 등 전분야에 걸쳐 망라되고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는 이들이 바로 전교조 선생님들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스스로 한국교총 소속이지만, 전교조에 대한 신뢰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교육계의 최대 현안인 NEIS(네이스, 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겸면초교는 NEIS작업을 전면 중단한 상태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아니면 누가 아이들의 인권을 지키겠다고 나섰겠어요. 아이들은 미성년이예요. 교육부가 NEIS를 통해 부모동의도 없이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려는 거지요. 이걸 막자는 거예요. 교육부나 학교현장에서 전교조를 대화상대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돼요."

전교조에 대한 신뢰의 밑바닥엔 이 교장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 '원죄의식'이 깔려 있었다. 89년 젊은 선생님들이 참교육을 외치며 거리로 내몰릴 때,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던 그는 '학교현장에 남아서 참교육을 실천해달라'는 동료 전교조 교사들의 말에 못이기는 척 하며 그들을 떠나보냈던 것이다.

그 후 14년이 지났고, 당시 선생님들은 학교에 돌아왔지만 이 교장은 아직도 "원죄가 없어질 수 있나"라며 스스로 고백하고 참회하고 있단다. 하지만 그는 원죄 이전에 한사람의 교사로서 유신시절 교육계비리를 비판한 글을 한 월간지에 연재해 청와대와 공안기관의 내사대상이 됐고, 이후에도 바른소리 때문에 늘상 학교와 교육청과 갈등을 빚어온 인물이기도 했다.

결국 어느 소속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를 두고 싸워왔다는 것이다. 현재 겸면초등학교에 보이는 모습들이 바로 이 교장이 38년 교직에 몸담으면서 쌓아온 교육철학의 반영인 셈이다.

"정년이 이제 두 해 남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놓고 가면 나머지는 후배들이 더 잘할 거라고 믿어요. 그들을 위해 오늘의 문제제기를 하고 필요한 자료를 모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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