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발’
[투데이오늘]‘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지 않는 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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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재[시사평론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우리 국민은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민의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는 이미지는 오랫동안 사생결단의 진흙탕 싸움을 벌였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같은 ‘고장난 불량 정캄일 것이다. 난장판이 된 정치를 지켜보는 국민의 불신은 정치무관심을 넘어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국민이 정치를 증오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일까. 그렇게도 정치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면 차라리 정치를 포기해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욕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가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의 꿈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도의 첫 수상 네루는 정치의 올바른 역할이 ‘국민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 말했다.

더 좋은 정치는 아예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해주는 정치이리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치는 ‘눈물 닦아주는 정캄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뺨을 느닷없이 때려 ‘국민의 눈에 눈물을 흐르게 만드는 정캄라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 정치는 ‘이념의 정캄가 아니라 ‘상황의 정캄다. 이념의 정치란 이념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정치를 말한다. 각 정당 정파가 특정한 이념을 기준으로 모이고, 또 그 이념에 근거한 정책과 공약을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끌어들이는 정치가 바로 이념의 정치이다.

상황의 정치란 그때그때 벌어지는 상황에 끌려가는 정치를 말한다. 하나의 사건이 터졌을 때 각 정당이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정치가 움직여 가는 정치인 것이다. 이념의 정치는 생각 있는 정치이고 상황의 정치는 생각 없는 정치이다. 이념의 정치는 내일을 짐작할 수 있는 정치이고, 상황의 정치는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정치이다.

예컨대 신당 창당이 말만 요란했을 뿐 표류하고 있는 것은 뚜렷한 이념을 내걸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신당 창당의 명분이 아니라 그 명분이 과연 올바른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치의 고질병을 해결하기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추진했다면 신당 창당에 힘이 붙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년 총선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추진하다보니 마치 노무현 지지파 대 노무현 반대파간의 당내 권력다툼처럼 되어버렸다.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 한나라당도 이념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했지만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가 떨어져도 한나라당의 지지가 올라가지 않는 사실을 한나라당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17대 총선이 이제 여덟 달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선거가 어떻게 치러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앞으로 여덟 달 동안 어떤 일이 터지고, 그 일이 우리 정치상황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한 ‘뜻밖의 결과’가 내년 선거에서도 나오지 않을까 짚어볼 수 있을 뿐이다.

사실 ‘뜻밖의 결과’라는 말은 그릇된 표현이다. 결과가 뜻밖인 것이 아니라 언론, 정당 관계자 또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틀렸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선거 결과는 ‘유권자의 선택’의 반영일 뿐이다. 표로 나타나는 유권자의 선택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도록 각 정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돈이나 지역감정, 색깔론, 흑색선전 등이 판치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발(invisible foot)’도 있다. ‘보이지 않는 발’이란 말을 처음 쓴 이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랑그로와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움직이지만 ‘보이지 않는 발’이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 밖으로 차낸다는 것이다.

2000년 4·13 총선 때 나타났던 낙선운동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발’의 작용이 아니었을까. 지금처럼 정치가 제 구실을 못하면 ‘보이지 않는 발’에 의해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왜 정치인들은 깨닫지 못할까.

/손혁재(시사평론가.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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