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담아내는 신들린 춤사위....(하)
영혼 담아내는 신들린 춤사위....(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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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현대 전위 무용계의 거인 '홍신자'

"'춤'은 몸짓이 아닌 영혼으로 추는 것"

   
▲ 홍신자
진정한 ‘꾼’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자기의 직업과 삶이 한 덩어리가 되어 육신과 정신이 함께 승화된 장인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요즘처럼 다양하게 분화된 가치나 직업들 속에서도 그 가치의 원형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모름지기 진정한 ‘꾼’이나 ‘쟁이’의 길이란 천형처럼 부여된 자기갱신에 대한 압박감과 두려움,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심으로 절명의 순간까지 제 몸과 마음을 던지는 일 일진데, 세상은 이러한 꾼들이 사라지는 추세인 것 같다. 특히나 국민들의 혈세로 먹고 사는 정치인들을 보면 최소한의 직업의식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쌀독 속에 든 생쥐처럼 느껴진다.

원칙을 밥 먹듯이 무너뜨리고, 최소한의 위, 아래를 무시한지는 옛날이고, 헐뜯고 비방하고, 쌈박질과 도둑질은 일상이 된지 오래고, 반성은커녕 적반하장으로 낯짝만 두꺼워진 채 아까운 세월만 허비하고 있으니, 가련한 지경이다. 헛공부한 것이다. 자기를 질타하고 비워 낼 줄 모르는 인간들이 어찌 출사를 하고 진정한 봉사의 길을 갈 수 있단 말인가.

공명심과 물욕과 권력욕만 가득한 승냥이들이여. 매일 누구에겐가 삼배라도 올리라. 아니면 이 여름 피서 삼아 설산에라도 들어가 그 눈부신 백화의, 무욕의 세계를 배우고 오시라. 내일 모레면 칠십 줄인데도 새순 같은 싱그런 마음자리를 잃지 않고 사는 한 예술인의 삶을 통해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을 배우시라.

홍신자씨는 영혼으로 통하는 어둡고 spare한 무용여정을 걸어 온 것처럼 그렇게 힘들여 성공한 무용가로 인정받고 나자 갑자기 ‘춤이 내 인생의 전부일까’ 라는 회의가 들자 춤을 떠나고 싶어 모든 것을 버리고 인도로 구도의 방랑자 길로 들어선다.

3년이란 긴 생활동안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도의 대 명상 철학자인 '라즈니쉬' 선생의 제자가 되어 요가와 참선, 명상의 세계를 체험했다는 홍씨는 결국 "춤은 직업이 아니고 내 육신과 혼을 모두 바치는 내 존재 자체"라는 숙명을 깨닫고 다시 춤으로 돌아온다.

"몸으로만 하려하지 말고 영혼으로 하라
예쁘게만 보이려고 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더 큰 춤을 출 수 있다
영혼을 담아내야 비로소 춤이다"



소위 '아방 가르드(avant-garde)'라 불리는 전위예술은 본시 군대 용어로서 전투할 때 맨 앞장서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부대라는 뜻이 변하여 차츰 예술분야에까지 전용된 말인데, 끊임없이 미지의 문제와 대결하여 풀어내는 혁명정신 즉 실험을 수반한 예술운동을 뜻하기도 한다.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왜, 하필 그 어렵고 힘든 분야를 선택 했는지 궁금했는데, 홍씨의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도전과 구도정신이 빚어낸 당연한 몫일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모든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천형 같은 것이 홍씨에게도 작용한 것이리라. 자기의 춤이 깊어지는 것을 느끼고 춤을 추면서 열반 즉, 구경(究竟)의 세계를 맛보았다니 가히 입신의 경지가 아닌가.

"나는 춤을 통해 내 안의 신(神)을 만나 대화하고 춤추고 논다. 내가 무대에 설 때 모든 관객은 또 하나의 신(神)이다. 나의 신(神)이 그 신(神)과 만나 하나가 되었을 때 그 순간이 나에게 열반이며 엑시터시의 순간이기도 하다"는 홍씨는 그렇기 때문인지 누구한테나 스스럼이 없고 깨끗하고 직설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이는 분명 일부러 애쓰거나 계산하지 않고 본래의 순수한 진면목으로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예술이고 춤이 곧 사람이라는 깨달음이 가져다 준 산물 일게다.

춤에 대한 당신의 세계관에 대해서 묻자 그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고 말한다. '한 없이 슬프고 허무하고 안쓰러운 것이 인생이니 마음껏 놀다 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웃게 된다는 것이다. 전국 순회공연을 한 자전적 작품인 ‘웃는 여자’는 그의 대표작인데, 생사일여(生死一如)의 불교적 세계관과 밀접한 통로를 형성하면서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동양적 음율과 춤으로 버무려 관객을 압도하고 있다.

춤을 감상하는 방법이 따로 있냐는 질문에 "자기만의 영혼의 눈과 감성으로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이지, 뭐. 안 그래?"하면서 몸뚱아리 형태나 보면서 껍데기만 분석하고 해석하려니까 자꾸 어렵고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무용을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하자 “몸으로 출려고 하지 말고 영혼으로 하라, 예쁘게만 보이려고 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더 큰 춤을 출 수 있다. 영혼을 담아내야 비로소 춤이다.”

은퇴는 언제쯤 하실 생각이냐고 농을 건네자 "죽으면 은퇴지"하신다. 당신다운 간명하고 명쾌한 웃음이 석양빛이 곱게 내려앉은 산과 함께 그대로 ‘웃는 산’이 된 듯 하다.

홍신자 총감독 '안성 죽산 국제 예술제'

푸른 녹음이 울창한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골에서는 해마다 ‘세계 전위 무용 축제’인 <죽산 국제예술 축제 >가 열린다. 올해로 아홉 번째인데 매년 6월경에 개최된다. 해마다 새로운 테마를 정해 테마에 대한 다양한 고찰을 할 수 있는 포퍼먼스와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공연들로 구성된다. 관객이 춤꾼들이고 춤꾼들이 관객인 일여(一如)의 정신을 구현하는 장이기도 하다.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내노라하는 춤꾼들이 몰려드는 이 예술제는 홍신자씨가 총감독을 맡아 이끌어 온 국제 예술제로서 5천여 관객들이 ‘웃는돌’을 가득 메운다. 한편 홍신자씨는 올해로 춤 데뷔 30년을 맞아 오는 8월27일부터 9월7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기념공연을 갖는다. 이 공연은 홍신자씨의 최신 춤 경향과 변화를 ‘웃는돌 무용단’의 신작 ‘시간 밖으로’를 통해 확인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품과 자료전시, 관객과의 간담회를 통해 씨의 무용세계에 대한 깊이를 체험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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