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한 아이들 '떠나라'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 '떠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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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여름방학이다. 아이와 부모 모두 일상을 제쳐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하지만 사람들 틈에서 휴식은커녕 고생만 하다 돌아오는 산천 유람이나 해수욕은 이젠 더 이상 '즐거움'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뭔가 분위기도 다르고 인상에 깊이 남을 개성 넘치는 여행 없을까. 정답은 바로 가까이 있다. 가장 소중한 가족과의 나들이. 아이들이 초등학생 정도 되어서 함께 움직이기 쉽다면 이번 여름은 아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학습과 모험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테마여행' 계획을 짜보자.

강인한 옛사람들의 정신 차밭에서 느낀다

코스 : 화순 유마사-유신리 마애여래좌상-해평리 장승-보성 대한 다원-율포해수욕장

참 강인한 삶을 살았던 보성 사람들은 차의 성정을 닮았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이식하지 못하는 차의 성질만큼이나 그 바다와 산과 강을 지키며 한없이 굳센 믿음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일면이 바로 신유제주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인 1921년 8월에 향교에서 문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술을 주세령 위반이라는 명분으로 일제가 방해하자 이를 목격한 유림들이 세무관리를 묶고 화형에 처하려 하였다. 이에 놀란 왜경들이 향교관계자 70여명을 검거하여 구속 고문하자 보성 지역 유림들이 궐기, 보성 유림들의 꿋꿋한 정신이 일제를 굴복시킨 대표적 사례이다.

이처럼 억세 보이는 그들이지만 자연 앞에 한없이 겸손하고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유신리 마애여래좌상과 해평리의 장승과 다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그 보성에 진입하기 전에 유마낭자의 전설이 어린 화순 모후산 자락 유마사에 들려 오래된 통돌다리도 건너보고 사자와 다람쥐가 지키는 부도와 돌로 된 성벽같은 산신각을 만나도록 한다.

호수와 같은 바다 득량만을 내려보며 자리잡은 보성의 다원들은 이제 전국적인 명소가 되어 주말이면 찾는 이들의 발길이 더욱 많아지는 곳이다. 그 중 대한 다원은 이들 차밭의 큰 형님과 같은 곳으로 70만 그루의 삼나무들이 호위병처럼 차밭을 둘러싸고 있어 절로 감동이 한 웅큼 찾아오는 곳이다. 그 차밭을 방문하여 향긋한 차 내음에 풍덩 빠져보고, 국내최초의 해수녹차탕이 있는 율포해수욕장에서 시원한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다.


흙도 밟아보지 못한 아이와 뻘에서 뒹굴자

코스 : 불갑사-법성포 숲쟁이공원-백바위해수욕장에서 갯벌과 만나기-동일염전에서 천일염 만들기

생명이라는 것의 소중함을 길 떠남을 통해 다시 확인하는 여행이 바로 갯벌을 찾아가는 것이다. 거대한 원전이 들어선 고장, 그러나 풍부한 물산이 넘쳐나던 포구를 지녔던 고장, 지금도 연간 몇백억원의 굴비를 가공하여 전국에 맛을 퍼뜨리는 고장이 바로 영광이다.

먼저 불갑사를 찾아 인도의 승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의 바닷길 유입의 가장 유력한 증거가 되는 사찰을 둘러보고 영광 우도 농악 전수관을 들른다. 이곳은 농악이 단지 농민들에게만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니라 법성포를 지키는 병사들에게 있어 진법을 훈련하는 데에서도 긴요하게 쓰였음을 확인해 주는 우도 농악을 체계적으로 전수하는 공간이다.

전수관을 나와 그들 농악의 실천적 공간이었던 법성포 숲쟁이 공원에 들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500년 된 숲이 아직도 그 영광스런 고장을 지키고 있고 단오날이면 이 근동 사람들이 모두 이 숲에 모여 잔치를 벌이는 곳이다.

다음 향할 곳은 백바위 해수욕장. 이곳에서 오랜 세월동안 바다를 풍요롭게 가꾸어 온 우리 강토의 한 부분인 갯벌을 밟을 수 있다. 또, 영광은 염전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만약 이곳에서 이장과 그 부인이 땀흘리며 일하고 있는 두우리 염전을 들른다면 천일염의 제조 과정과 천일염의 판매 과정, 중국산 소금과의 구별법 등에 대한 정보도 들을 수 있다.


어라? 장승 얼굴이 내 얼굴과 닮았네

코스 : 의지리장승-유곡리장승-실상사-벽송사-북천리장승-서천리장승-권포리장승-호기리장승-호경리장승과솟대

호남 사람의 본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 수많은 세월이 흘러온 호남 땅의 역사를 더듬어 그들의 원형질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일까?
장승만 찾아가는 길은 어쩌면 단조롭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들의 얼굴을 깊이 바라보면 그 마을 사람 누군가의 심술궂은 혹은 앳된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즐거운 일이다.

고도가 높아 여름이면 서늘하고 겨울이면 눈이 끊이지 않는 곳 운봉. 그곳에서 장승을 찾아가는 길은 우선 권포리가 제일 먼저다. 이 마을에는 특이하게 4기의 장승이 있다. 한쌍은 마을 동구밖에 그리고 다른 한쌍은 마을 회관 앞에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다. 마모가 심한 탓에 얼굴의 윤곽이 흐릿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마을의 참봉깨나 했음직한 모습의 남자 장승과 후박한 인심을 지닌 여장승으로 소박한 시골사람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길을 나와 운봉읍내로 가다 개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남원 육묘장이 있다. 이곳은 바로 우리 식물의 원형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곳으로 남부지역 산림의 나무와 야생화를 보급하는 전진기지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면 더 없이 좋은 여행.

다음 코스는 조금 떨어진 북천리의 장승이다. 북천리 마을의 입구에 서 있는 두기의 장승은 하나는 서방축귀대장군의 명문을 달고 있는데 그 모습은 전형적인 마을 미륵을 닮은 모습이다. 맞은편의 동방축귀대장군은 영화 스파이더맨을 닮은 듯하여 웃을 자아낸다. 삼각형의 몸통에 상투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 마을의 농투사니를 모델로 삼았음직 하다.
이렇게 마을마다 다른 장승의 모습은 지난 우리 조상들의 삶을 고스란히 느끼게 할 것이다.


죽어가는 바다와 살아있는 바다를 함께 만난다

코스 : 서문안 당산-동문안 당산-새만금갯벌-개암사-내소사-수성당-채석강

운봉의 장승이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았던 농사꾼 모습을 닮았다면 부안의 장승은 부잣집만 들락거리며 따스한 밥만 먹고사는 떡 대 큰 머슴을 닮았다. 날카로움이라고는 털끝만치도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부안의 장승들이다. 그런데, 부안의 장승들은 다른 지역의 장승과 달리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다. 동문안 당산의 기능은 마을사람들의 길흉을 돌보아 주고 개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여느 당산과 다름없지만 서문안의 당산은 산신의 격을 갖춘 당산이기 때문에 개인의 소사를 비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얘기가 자뭇 신비해 진다.

부안을 빠져 나와 좀 나가다 보면 해창만의 바다가 보인다. 뱃고동 소리도, 수많은 바다새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저 멀리 바다로 파고든 방파제만 보인다. 저 바다 안쪽에 있는 섬을 이쪽 바다와 저 위쪽 육지에서 연결하여 막아내고 그 바다를 모두 메꾸어 농경지로 개간하겠다는 계획이 야심차게 진행되는 곳이다. 그곳은 다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새만금갯벌'이다.

죽어 가는 바다를 뒤로하고 안쓰러운 모습으로 개암사로 향한다. 우뚝 솟은 두 개의 바위 아래 비행을 마친 새가 사뿐히 내려앉은 자세로 자리잡은 대웅전의 모습은 오래된 절의 고색 창연한 모습이 변함 없다. 옛 백제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이 모였던 울금산성의 모습이 더욱 또렷하다. 이런 개암사를 뒤로하고 떠나는 내소사에서는 민간 신앙의 원형이자 아직도 마을 공동체 신앙으로 전승되는 당산제를 수용하고 있는 절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가 깃든 현장을 다니다 보면 금새 시간은 흘러지는 해를 볼 수 있는 채석강이 나온다. 석양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싱싱한 횟감을 찾아 횟집에 들리는 것도 '맛있는 여행'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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