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고는 지금…>"집에가기 싫어요. 빨리 정상화를"
<한빛고는 지금…>"집에가기 싫어요. 빨리 정상화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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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학년 등교거부 이틀을 앞 둔 24일 오전 전남 담양 한빛고는 잔뜩 흐린 날씨였다. 점심시간 전 운동장 한 모퉁이에서 6∼7명의 남녀 학생들이 내일 담양읍 관방천에서 열릴 체육대회를 준비 하느랴 공차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학교운동장이 비좁아 해마다 장소를 옮겨 교내 체육대회를 치러왔다"고 한다. 운동장 한쪽 관람석에 앉아 공차기를 지켜보고 있던 2학년 가야반 성봉이는 등교거부 투쟁을 앞둔 마음을 묻자 "빨리 정상화해주세요, 솔직히 집에 가기 싫어요"라며 얼굴을 떨구었다.

옆에 있던 같은 반 여학생 한결이도 "마음이 아픕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괴롭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라면서도 "재단과 전남도교육청에 마지막으로 하는 호소"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듣고 있던 심민이도 "23일 식구총회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서로 걱정하면서 울기고 하고, 웃기도 하면서 결정한 것인 만큼 따를 것"이라며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서 결정한 것임을 설명했다.

공차기를 마치고 합류한 성주는 "어른들의 욕심이 저희들을 이용하고 있으며 학교 설립도 정치용이었다"며 "전국 어디에도 없는 이 학교에 남고 싶다"고 말했다. 성주는 "등교거부가 시작되면 1학년 후배들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2학년과 3학년 선배들은 학교생활이 오래돼 학교에 대한 사랑도 있어 걱정이 없는데 1학년 후배들은 입학하자마자 바로 이런 일들을 접하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들었다.

이어 성주는 "1·2학년 대부분이 부모님들과 전화 통화하면서 한 번쯤은 전학권유를 받았을 것"이라며 "많은 아이들이 울면서 '학교에 남고 싶다'고 할만큼 학교를 좋아하고 있다"고 요즘 한빛고 학생들이 겪고 있는 갈등과 아픔을 전했다.

성주 자신도 강진으로 내려오라는 부모님께 "이 학교를 지키고 싶다. 다른 학교로 가면 적응이 안될 것"이라며 애써 부모를 설득했었다고 했다. 성주는 "돈 많은 어른들이 우리들에게 사회를 일찍 가르쳐 줬다, 잘못한 것을 빽으로 막아버린 것 같다, 선생들이 너무너무 고생하셔서 불쌍하다"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옆에 있던 한결이, 성봉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장을 뒷편 교무실은 '한빛사랑'이라고 적혀있는 빨간 조끼를 입은 서너명의 교사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배수홍 교사대표는 "등교거부투쟁은 지난 21일 경인지역 학부모를 시작으로 , 22일 광주전남지역 학부모를 시작으로 26일까지 전국학부모들의 결의로 결정 된 것"이라며 "26일 오후 비상학부모 총회에서 1학년 99명, 2학년 94명의 등교거부 투쟁이 공식 선언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른들의 돈 욕심이 저희들을 이용면 되나요"
등교거부 앞둔 학생들 눈물바다로 '학교사랑'


배 교사는 "교사들은 전원 학교에 정상적으로 출근 할 예정이며 이번 학부모들의 등교거부 투쟁 결정을 교사들은 전적으로 이해하고 지지한다"고 교사들의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

배 교사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재단과 전남교육청은 사태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어떠한 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이사진 취임 승인이 취소 될 때까지 무기한 등교거부투쟁, 교육부 앞 1인시위, 전남도교육청 앞 시위 등을 펼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배 교사는 또 "3학년 학생들도 등교거부투쟁 동참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으나 투쟁진행에 따라 참가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안다"며 '일정시점에서 고3 합류'를 시사했다.

점심시간 구내식당으로 가는 짧은 시간에도 등교거부투쟁이라는 무거운 분위기는 사라지고 학생과 교사들간에 "시험 잘 봤니?", "너무 어려웠어요", "뭐가 어려워?" 대화가 오고 갔다. 이순간 만큼은 어디에도 주묵 들지 않는 자연스러움 그대로였다.

2학년 학생대표 주영이는 "학생의 본분은 공부인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죄송하다"며 "1학년 후배들도 전학을 많이 갈 것 같다"고 우려를 보였다. 주영이는 "설립자가 학교 설립당시 도움을 준 것이 교육에 대한 열의였는지, 사적이익이었는지 의심스럽다, 교육자는 아닌 것 같다"고 그간의 실망감을 드러냈다.

주영이는 또 "정상화 투쟁이 불안하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등교거부 투쟁이라고 생각한다"며 "광주에 사는 어른들이 깊이 관심을 가져 달라"고 어른들의 실질적인 도움을 부탁했다. 주영이도 앞서 운동장에서 만난 학생들처럼 "아직도 어린 고등학생인데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것 같다"고 학교정상화 투쟁 참여 이후 자신의 달라진 '세상보기'를 내비치며 쑥쓰러워 했다.

학교를 나오는 길에 체육관 앞에서 만난 1학년 탐라반 담임 정관중 교사는 "등교거부를 앞두고 수업 중에 아이들이 울음바다가 됐다"며 "이사장이 조금만 변하면 정말 학교가 잘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정상화를 간절히 바랬다.

정교사와 대화 중에 가녀린 몸으로 봄비를 맞고 있던 봄꽃들이 아이들의 손길에 이끌려 비를 피하는 모습이 행복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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