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교사의 '기간제' 체험기-1> "대학성적 안좋다고 탈락"
<현직교사의 '기간제' 체험기-1> "대학성적 안좋다고 탈락"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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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들에게 2월은 피마르는 달이다.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어떤 사업을 추진한다는 공문을 받고 교육청에 낼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있던 중이었다.

기간제들은 1년이 지나면 다시 서류를 내고 면접과 수업실기를 받아야 하는데 1차 서류에서 떨어졌다는 거다. 재단 이사장님이 대학 성적이 안좋다고 떨어뜨렸다고 했다.

교사로서 결격사유가 있다면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 지도면이나 학교생활면에서 1년동안 검증을 받지 않았던가.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아왔고 00반 지도하느라 여름방학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으며 연구수업 성적도 좋았다.

눈치껏 잔일을 도맡아 했으며 따로 꾸중이나 지적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대학성적이 나쁘다고 탈락시키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기간제 교사의 문제는 이의가 있어도 어디 호소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가져다 쓰고 필요 없으면 내다버리라'고 정부가 솔선수범해서 앞장서고 있는 판에 어디에 항의를 한단 말인가.

비참했다. 능력 있고 부지런한 선생이라고 말해놓고 뒤에서 칼을 들이대다니.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탈락하고 나니까 별의별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기간제로 버틸려면 빽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이 있던 한 기간제 선생님은 높은 분과 친분 있는 아버지를 둔 덕분에 살얼음 같은 2월을 느긋하게 보내기도 했다.

기간제는 교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무직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도 않는다. 4대 보험을 들어주지 않는 학교도 있다. 일은 정교사와 같이 하지만 연수도 못받고 휴가 쓰는 것도 힘들다.

일은 정교사와 같은데 휴가 쓰는 것도 힘들어
그나마 계속 버틸려면 돈과 빽 있어야


부당해도 말한마디 못한다. 심지어 학기 때는 교사였다가 방학 때는 교사 아니었다가 다시 학기가 되면 교사가 되는 사람도 있다. 담임 시켜놓고 방학이라고 월급 안주면 방학동안만 담임을 하지 말라는 것일까. 정말 황당하다.

모가지가 간당간당한 일년 살이 인생들에게 도대체 무슨 계획과 전망이 있단 말인가. 탈락되고 나서 제일 곤혹스러운 것은 00반 아이들의 눈길이었다. 나를 믿고 이제 막 마음을 열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나는 실망과 배신감만 안겨준 것이다.

내가 일년짜리 기간제라는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집에서는 시부모님 뵙기가 죄송스러웠다. 학교일 하느라 집에서는 잠만 자던 며느리가 일년만에 짤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유치원 다니는 큰애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이제 학교 안나가? 이제 선생님 아니야?"

내 자리를 대신해 들어온 사람은 남자선생님이었다. 이사장님이 그 남자선생님을 뽑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기간제 일년만에 내가 얻은 교훈이 있다. 기간제니까 기간제만큼만 일하면 된다는 것이다.

교사의 사명 같은 것이 왜 필요한가. 아이들에게 따뜻한 교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다른 선생님들과 화합하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정교사가 하늘이라면 기간제교사는 땅이다.

내 돈 들여 밥 사먹여가며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하지도 말아라. 상 타와봤자 기간제는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그저 돈 받은 만큼 수업해주고 나머지 시간은 자기 실속차리는데 써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돈과 빽을 만드는데 온힘을 기울이자. 우리는 학교라는 큰 조직의 하찮은 부속품이 아닌가.
*본인의 요청에 따라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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