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교사의 '기간제'체험기-2>"죽으라면 죽는 시늉 해야지"
<현직 교사의 '기간제'체험기-2>"죽으라면 죽는 시늉 해야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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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범대를 졸업했지만 교사라는 직업에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운명인지 필연인지 교단에 서보지 않겠냐는 학과선배의 단 한마디 말에 2년여의 서울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교단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비록 기간제 교사였지만 열심히만 하면 1년 후 정식 교사로서의 자격을 보장해 주겠다는 교감선생님의 말씀을 철썩 같이 믿고, 합격 후 이튿날부터 근무에 들어갔다.

1999년 3월 22일자로 근무를 시작했는데 당시 그 학교에서는 3년째 윤리 수업이 기간제 교사로 메워지고 있었으며 일주일에 두시간이던 윤리 수업은 그 때까지 계속 보강이 되고 있었다.

출근과 동시에 이제까지 다른 선생님들이 한시간씩 보강했던 약 60시간의 수업을 하루에 두 시간씩 메꿔 나가기 시작했다. 본 수업을 1주일에 30시간씩 하는 강행군에 완전 초보 교사의 좌충우돌 교단 생활이었지만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며 생활했다.

시작이야 어찌되었든, 나는 그 학교에서 여자라는 점과,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1년 반만에 쫓겨났다. 1주일 전에 통보한 것도 그나마 옛 정이 있어서라며 주위 선생님들께서는 위로해 주셨지만 당시 내 마음은 학교가 다 이런 것이라면 다시는 교사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우세했었다.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짤릴려다 보다'와 '괜찮을 것 같네'를 하루에도 열 두번씩 마음속으로 외치며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학교에서 행해지는 온갖 불합리한 점들을 눈감고 귀막고 입막으며 살아야 한다는 주위 선생님들의 당연 논리였다.

당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기간제때는 다 그래. 죽으라면 죽은 시늉까지 해야지', '그 전에 있던 기간제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여학생들 생리대를 1년동안 태웠어도 군소리가 없었네', '그래도 짤렸는데 뭘' 따위였다.
또 '아무개 선생은 재단에서 보는 눈이 곱지 않기 때문에 같이 다니면 안된다'는 경고성 말들이었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조차도 거론되지도 않은 채 학교 이사장의 개인적 선호도에 의해 교복 디자인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데도 학교 선생님들은 '사학이 다 그렇지 뭐. 어휴!'라는 자조 섞인 푸념만 일삼았고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나는 내 처지가 한 쓰러웠다.

'잘하면 정식교사를 보장해 주겠다'
군소리 없이 귀막고 눈막고 입막으며 생활


서울에서 열렸던 이사장 자녀의 결혼식을 가기 위해 일주일 전에 예정되었던 학생회장 선거를 학생들에게 온갖 공약을 미끼로 핑계를 대며 결혼식 날로 정하데도 나는 숨죽이며 있었다.

당시 내가 가르쳤던 단원은 '자유와 권리를 가진 시민의 역할'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늘 실생활에서 사례를 찾았던 나는 교과서 밑줄만 긋고 얼렁뚱땅 수업을 마무리했다.

기간제 교사에 대한 처우는 각 시.도 교육청에 일임되어 있기 때문에 시도마다 그 처우가 상당히 달랐다. 전북은 경제적인 면에서 특히 불합리했다. 우선 방학중엔 월급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리 방학 동안에만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었다. 또 기간제 교사에게 가계지원비가 책정이 되어 있지 않아서 가계지원비가 끼어 있는 달에는 그야말로 생활고에 허덕였다.

2년 후 나는 정광중학교에 기간제를 거치지 않고 정식 채용되었다. 기간제 교사들이 예전에 비해 경제적인 측면에서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잘하면' 정식 교사를 보장해 주겠다는 말에 군소리 없이 귀막고 눈막고 입막으며 생활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기간제 교사들이 정식 교사들이 되었을 때 상당수의 교사들은 '변했네'라는 말을 들으며 기간제 교사 때의 멍에를 지고 살아간다.

때로는 기간제 교사 생활이 힘들었을수록 자신이 단지 정식 교사라는 사실에만 만족해서 학교 내 민감한 사항에 모든 결정을 유보해 버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는 기간제 교사였을 때의 내가 생각나서 우울해지곤 한다. 기간제도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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