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산다는 것은…
광주에서 산다는 것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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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방송국을 가는 일로 시간이 늦어져 택시를 탔다. 아무 생각없이 택시를 탄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교조와 관련된 모 학교 교장의 자살 뉴스를 듣곤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내뱉었다. "또 마녀사냥이 시작되겠구만"
그러자 기사 아저씨 왈 "이번 일은 전교조가 너무 한 것 같아요. 사람을 얼마나 몰아붙이면 자살할 생각까지 했을까, 하여간 전교조도 안된다니깐...,"

그리고 이어지는 비분강개한 논조의 기사 아저씨의 이야기들. 목적지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사 아저씨의 얘기는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날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목적지에 도달했지만, 귀찮아서인지 입씨름을 하기가 두려웠던지 어쨌건 난 한마디도 그 아저씨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먼저 일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언론의 대부분은 이 사건을 전교조 전체의 일로 치부하면서 자살한 교장을 동정적인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호남소외' 무지몽매한 지역언론보도 참으로 한심

물론 자살을 하게 만든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들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런 사건이 일어난 과정과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들을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일로 전교조가 과거에 싸워왔던 숭고한 교육개혁의 업적들을 폄하하거나 마녀사냥식으로 그들을 재단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보수권력, 특히 수구언론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일을 기화로 국민의 여론을 분열시키고 우리의 단결을 깨는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 사회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는 것은 이런 언론에 눈이 멀어 너무나도 쉽게 연대와 단결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건 전적으로 수구언론의 죄악이지만 그런 수구언론의 음모에 쉽게 말려드는 우리 시민들의 투철한 연대의식과 비판정신이 아직도 굳건하지 못한것도 무관하지 않다.

요즘 몇몇 지역신문들의 칼럼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호남이 상대적으로 차별받고 있다는 얘기를 연일 써대고 있다. "남 좋은 일만 하는 '바보 광주가' 더 이상 돼서는 안된다", "신 역차별이니 신 호남 푸대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라며 호남인들은 단결해야 한다고 부추기까지 하고 있다.
가히 어처구니 없고 무지몽매하고 폭력적이기까지한 지역신문의 작태라 아니할 수가 없다. 그것도 신문의 얼굴이라 할수 있는 칼럼에 이런 글을 올리는 언론인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독자들을 상대하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의 저의는 뻔하다. 첫째, 신문이 자신의 사회적인 권력과 배경을 유지해주는 장치라는 것이며, 둘째는 자신들의 글에 대한 반작용으로 뭔가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민심을 호도해서 자신이 속한 회사와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데만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십분백분 양보해서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정말 이해할수 없는 것은 이런 칼럼이 나오는 신문사의 기자들이 모두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막나가는 신문사라 할지라도 양심은 있기 마련일텐데 누구 하나 그것이 아니라고 용기있게 반론하는 기자들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이런 칼럼을 보고도 지역사회에서 추상같은 호령을 치는 양심있는 지성인도 눈씯고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는데 박봉의 기자들에게 양심을 바라기는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얼마 전에 지역 대안신문의 모기자가 지역기자로서의 고충을 자사의 란을 빌어 토로한 적이 있지만 그 기자의 인격과 양심을 믿어 의심치 않는 나로선 대부분 수긍이 가면서도 자기 변명에 다름아니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는건 무엇때문일까?

생존 위기를 자초케 한 것은 지역 언론인들 스스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재 지방신문의 최대 화두는 바로 ‘생존’이라는 사실이다. 어차피 자본주의 자체가 ‘적자생존의 정글’이라지만 지방신문이 처한 ‘생존의 위기’는 가히 폭력적이다. 언론인이라는 존재이유를 ‘무화’시킬 정도의 생존권적 위기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때때로 생존을 위한 본능은 가치문제에 선행한다는 사실에 대해...,"

사실 그 기자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본능은 가치 이전의 문제 일수가 있으니 말이다. 당장 배고픈 사람에게 이념이나 철학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우매한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에게 다시 묻고 싶다. 무엇을 위한 생존이며 누구를 위한 선택인지를 말이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생존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치의 진정성은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 지역신문의 대다수가 본말이 전도된채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인데 생존의 위기를 자초케한 것은 지역 언론인들 스스로에게 있다고 하겠다.

지방 신문이 처한 생존의 문제는 가히 폭력적이라고 했지만 생존의 문제라기 보단 양심의 문제라고 얘기하고 싶다. 자신의 밥그릇이 위기에 처하면 투쟁하고, 사주나 회사가 막나가면 입을 닫는건 어떤 논리로 설명될수 있을까? 최근에 몇몇 지역 신문의 노조가 사주와 회사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일들이 빈번한데 사실 그들이 정의와 진실이라는 이름아래 굳건한 단결을 보여준적이 있던가? 애초에 그런 사주밑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시녀로서 굴종을 한게 아닌가 말이다.

이건 비단 지역 신문의 일은 아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보수 수구언론이 다 마찬가지 경우 아니겠는가. 난 그 기자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으면 기자 노릇을 그만두라고, 기자 아니더라도 할 일은 많고 옳고 정직하게 살 방법은 많다고, 그리고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 노릇을 해야한다면 우선 자신이 속한 신문사가 정도를 걷고 있는 회사인지 다시 한번 살펴 보라고 말이다.

이건 비단 그 기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앞선 말한 무지몽매한 칼럼 따위를 싣는 신문사의 기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사실 이런 신문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난립하는 것은 시민들의 잘못이 크다. 안사고 안봐야 되는데 말이다. 적어도 장담하건대 조중동이나, 수구보수언론,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시민들의 연대와 단결을 교묘하게 이간질하며 보수권력에 부화뇌동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세습화하는 언론들이 계속 이 땅위에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말을 안해도 뻔하다. 암울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스스로 한계 극복 못하면서 문화수도론 운운 부끄러워

지역에서 문화운동의 주변부에서 매돌고 있는 입장에서 문화라는 말이 우리의 삶과 큰 거리감이 있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라 하겠다. 난 가끔 스스로 질문하곤 한다. 내 주변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힘을 보태준 적이 언제 있던가? 불의한 조직과 힘의 논리에 맞서 장렬하게 항거한 적이 있던가? 연대와 참여를 얘기하면서 달콤한 임금과 사회적 위치에 취해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취한 게 아닐까?

나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이면서 동료의 아픔과 상처를 한번이라도 진정으로 보듬어 준적이 있던가? 반성하고 또 반성해 봐도 내 죄는 줄어들지 않는다. 문화수도론이 왔다갔다 하는 지역여론을 보면서 먼저 생각나는 단상들이다.
스스로 연대하지도 못하고 내부의 비효율성과 비민주적인 점들을 극복 못하면서 문화수도론 운운한다는게 자못 부끄럽기만 하다. 적어도 이 땅 광주에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사는 것 이상으로 내게 요구하고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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