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단상-노영필]한 교장의 죽음과 아이들의 미래
[학교단상-노영필]한 교장의 죽음과 아이들의 미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4.1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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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광주 운남중 교사]
예산의 한 초등학교 교장의 자살사건은 모두에게 충격이다. 무엇보다도 현장학교의 수장인 교장이 자살을 택했다는 점에서 참담한 슬픔이 밀려든다. 그 동안 교육계의 갈등으로 교사들의 죽음을 여러 차례 경험했지만 이처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중한 자리에 아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면 호들갑스럽게 비방의 시선으로 묻어갈 일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죽음 앞에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랴. 그 죽음이 값지려면 상호비방보다 경건해져야 한다. 죽은 자 앞에서 잘 잘못은 무의미한 일이다. 산 자들에게 다시 그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우리 모두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솔직히 지금의 학교를 얼마나 알고 있단 말인가. 과거의 수공업적인 환경에서 자란 어른들이 첨단환경의 학교 현실을 얼마나 알고들 말하는 것인가.

학교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학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게다가 학교에 관한 한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을 생각하고 보거나 자기 직장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문제다.

흔히 요즘의 학교를 비꼬아 "19세기 교실에서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말이 있다. 톡톡 튀는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교육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산사태를 목격하면서 우리들의 관점은 기간제 교사와 교장의 갈등에 국한하지 않고 교육현장의 시스템이 빚어낸 문제라는 점에서 다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교육현장의 시스템이 빚어낸 문제'라는 인식 필요


학교는 사회화의 통로이다. 때문에 세대간의 갈등이 늘 공존하는 곳이다. 나이든 교사와 젊은 교사, 선생님과 학생들 간의 갈등이 늘 공존하는 곳이다. 거기다 국가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꿈꾸는 교사들과 늘 갈등하게 된다. 그 최전선에 맞닿은 곳이 학교현장의 관리자들이다.

이번 사건에서 기간제 교사의 항변과 교장의 죽음으로 덮어버리는 사이 아이들이 멍들고 교육의 책임이 방치될 수 있다. 교장 측에서 기간제나 전교조를 비난하고 전교조나 기간제 교사 측에서 상대방을 탓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비방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발생하는가 그 배후를 더듬어볼 때 그 갈등을 넘어 진정으로 건강한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교단은 아직도 권위주의로 지탱되고 있다. 수직적인 지휘 통제 구조가 그것이다. 교육부에서 결정되면 단위학교까지, 현장의 상대적인 자율성은 끼어들기 힘들다. 거기다 관리자 양성도 합의된 수평적 평가와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는 과정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책임감이 떨어질 수 있다. 일정한 점수가 차면 승진서열이 정해지는 현실 속에 문제는 늘 잠복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교장의 자질론보다는 교장의 교육철학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금 교무실에서 교감과 교장이 되는 시스템은 학교운영 전체를 보고 관리자의 마인드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다. 지시와 간섭보다 조정하고 주선하며 조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과 동료교사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어른들 횡포에 아이들 최대 희생자되선 안돼

이번 사태의 최대 희생자가 아이들이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선생님이 혼난 것을 보았고, 교장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것을 본 그들의 상처를 한 번이라도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이나 언론은 마녀사냥 식이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의 상처를 안아주어야 할 때이다. 어른들의 횡포에 아이들이 상처받으면 미래가 어두워진다. 어른들은 옳고 아이들은 미숙아쯤으로 생각한다면 아이들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한 교장의 죽음이 모든 교장의 죽음이라는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우리 교단의 죽음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어찌 되었던지 약자인 기간제 교사에게도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한 교장의 처절한 죽음에도 깊은 애도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따뜻한 시선이 만들어지면서 한 교장의 죽음을 값지게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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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비겁한 2009-11-11 18:25:22
노영필 썩어빠진가식의 껍데기 집어치워라
19세기 교사의 표본
너로 인해 가장힘들어하는 건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