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겁의 세월이 만든 강과 바위
억겁의 세월이 만든 강과 바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3.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갑수 산이야기⑫ 고리봉·문덕봉(709m·589m 전북 남원)>


88고속도로를 타고 섬진강을 건너 남원쪽으로 달릴 때마다 손짓하는 산이 있었다. 그 산은 남원에서 곡성으로 갈 때도 병풍을 두른 듯한 모습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곤 했었다. 바로 고리봉과 문덕봉이다. 어디에 내놓아도 아름다움이나 깊이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음에도 인근의 지리산에 가려 거기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했던 산. 나는 봄바람을 타고 그 산에 간다.

내동리 용동마을 양계장 옆 임도를 따라 올라가자 산비탈을 개간한 널따란 밭에 보리가 파릇파릇하다. 보리밭에서 놀고 있던 꿩들이 사람 발자국 소리에 푸드득 날아간다. 소나무 일색의 숲으로 빠져들자 소쩍새 울음이 구슬프다.

그윽한 솔숲 길을 따라 문덕봉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일신된다. 남쪽으로 불쑥불쑥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마치 설악산을 연상케 한다. 암봉 뒤로는 두바리봉과 삿갓봉, 고리봉이 섬진강 너머 곡성 동악산을 실루엣 삼아 가슴에 안겨온다. 이러한 산들은 널따란 금지들판의 수평구조와 만나 수직적인 생동감을 자아낸다. 남원과 순창, 임실 일원의 산들이 남원시내를 포함하여 여러 마을과 들판을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푸른 나무바다에 핀 바위 꽃


문덕봉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쌍봉낙타등 같다. 남쪽 능선에서 뒤돌아본 문덕봉은 오를 때와는 딴판으로 40∼50m 되는 벼랑을 이루어 우람하다. 그 아래로는 소나무가 울창하여 마치 푸른 바다에 뜬 돛단배 같다.

아기자기한 암릉길은 금새 그윽한 솔숲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첨탑 같은 암봉이 나타나곤 한다. 부분적으로 보면 세밀하게 새겨놓는 조각작품처럼 아기자기한데, 전체를 보면 범접하기 힘든 큰바위얼굴 같이 웅장하다.

모든 것이 억겁의 세월이 만든 예술품이다. 사람의 접근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바위는 다가가면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마냥 살며시 받아준다. 잿빛 바위에 비췬 소나무의 푸름이 학처럼 고고하다. 앞에서는 손짓하고 뒤에서는 발목을 붙잡는다. 행복한 고민이다. 불쑥불쑥 솟은 암봉은 푸른 잎 위에 핀 거대한 꽃 봉우리다. 푸른 나무바다에 핀 꽃은 자신도 아름답지만 인간의 마음도 아름답게 한다.

가끔 시야를 멀리 가져가면 고리봉과 동악산 능선이 곡선미를 자랑한다. 미모의 바위봉우리를 넘자 포근한 송림이 이어지고, 그럭재로 내려선다. 하늘도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의 송림에서는 새들이 즐겁게 노래를 하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가슴을 파고든다.

섬진강을 옆에 끼고 걷는 일이 한없이 편안하다. 전북 진안의 봉황산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임실과 순창을 지나 이곳 남원 땅을 적신다. 그리고 전남 곡성을 지나면서 보성강과 합류하여 강다운 위용을 갖춘다.

오백 리를 돌고 돌아 흐르는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염도가 낮은 강으로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원래 섬진강은 모래가 많아 다사강(多沙江)이라 불렀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우왕 때 왜구가 섬진강을 거슬러 침입하자 새까맣게 몰려든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이를 두려워한 왜구가 물러갔다고 하여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맑고 정겹고 친숙한 강, 섬진강


삿갓봉에서의 전망은 좋지 못하지만 바로 아래 전망대바위에서 보는 고리봉과 섬진강, 동악산의 모습은 압권이다. 눈앞에 다가선 고리봉의 바위가 거대한 성채처럼 웅장하고, 그 옆으로 639봉이 형제 마냥 다정하게 서 있다.

남원시 대강면과 곡성군 입면을 적시며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과 주변 마을 그리고 들판이 한없이 정답다. 우람한 고리봉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아찔하다. 험한 암릉 타고 올라가는 것이 힘이 들어 뒤돌아보면 삿갓봉의 아름다운 풍경이 금방 피곤함을 잊게 해준다.

고리봉 정상에 선다. 문덕봉에서 두바리봉-삿갓봉-고리봉-639봉을 거쳐 섬진강으로 빠져드는 암골미 넘치는 산줄기가 봄기운과 함께 꿈틀거린다. 들판을 적시던 유유한 물길의 섬진강은 고리봉과 동악산이 만들어낸 7km의 협곡을 따라 여울을 만들어낸다. 솔곡이라 부르는 이 협곡이 바로 밑에 와 있다.

솔곡을 지난 섬진강은 다시 강폭이 넓어지면서 물길이 순해진다. 곡성에서 남원으로 이어지는 신기철교를 지난 섬진강은 남원에서 오는 요천과 만나 맑고 고운 모래 위를 유유히 흘러간다. 물길이 하도 순해 순자강이라는 이름으로 곡성들판을 적신다.

주변의 높고 낮은 산들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남원시내와 곡성읍내, 순창읍내 역시 주변의 너른 들판과 함께 다가온다. 지리산 주능선을 한눈에 바라보려는 기대는 화창하지 못한 날씨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고리봉 동쪽 자락으로 내려 보이는 만학골의 반석이 깔끔하다. 산비탈에는 바위조각품과 예쁜 소나무들이 만든 전시장이 계속된다.

고도는 낮아지면서 긴 능선이 이어지지만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린 비경은 계속된다. 산줄기의 여맥이 섬진강으로 빠져들면서 나도 섬진강으로 달려든다. 섬진강 강가에 앉자 물소리가 경쾌하다. 비교적 오염이 안된 맑은 섬진강을 바라본다. '강과 바다가 계곡의 주인이 되는 것은 스스로 낮은 곳에 자리잡아 모든 골짜기의 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노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산행코스
-. 제1코스(종주코스) : 용동마을(1시간 20분) → 문덕봉(1시간 20분) → 그럭재(1시간) → 삿갓봉(1시간 20분) → 고리봉(30분) → 천만리묘(1시간 40분) → 상귀삼거리(총 소요시간 : 7시간 10분)
-. 제2코스 : 송내마을(30분) → 그럭재(1시간) → 삿갓봉(1시간 20분) → 고리봉(1시간) → (만학골 경유) 방촌리(총 소요시간 : 3시간 50분)
-. 제3코스 : 약수정사 → 두바리봉 → 삿갓봉 → 고리봉 → 약수정사
▷교통
-. 88고속도로 남원교차로를 빠져 나와 24번 국도를 따라 순창쪽으로 20분 정도 달리면 주생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5분 정도만 가면 금풍저수지가 나오고 , 여기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내동리다.
-. 남원버스터미널 앞 시내버스정류장에서 내동리행 시내버스가 07:45, 09:15에 있다.
www. chosun.ac.kr/~gsjan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