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별기고] 화려한 가출을 꿈꾸는 광장이 되라
[창간특별기고] 화려한 가출을 꿈꾸는 광장이 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3.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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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확[시인. 한신대 문예창작과 강사]

늦깎이 학업 관계로 광주를 잠시 떠나 있는지 2년여 세월이 흘렀다. 또한 아직도 얼마나 더 고달픈 서울살이를 더 해야하는 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다. 딱히 학위논문과 생업 문제들 때문만이 아니라,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광주로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 여기에 그대로 주저앉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고향 광주 사람들이 떠오르고, 스무 살 이후 대학과 어줍잖은 신문기자 생활 등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쌓인 애증의 시간들이 교차해 지나가곤 한다. 설령 다시 못 돌아간다고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분명한 것은 내게 서울은 어디까지나 임시거처라는 사실이다. 단 한 번도 여기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정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나는 아직까지 완벽한 광주시민이다.

광주 그립고도 두렵다

고백하건대, 그러나 나는 광주를 떠나있는 동안 될 수 있는 한 광주를 잊으려고 노력했다. 어쩌다 내려가더라도 극소수의 지인들을 제외하고 주로 가족과 함께 보내다가 뭔가에 쫓긴 듯 상경열차를 타곤 했다.

물론 모든 기억들이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지만, 물기 젖은 빨랫감처럼 가만 주무르기만 해도 주르르 쏟아질 것 같은 인정과 우정, 혹은 온갖 인연들의 사슬들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가장 앞서서 였다. 마치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도 막상 자궁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듯 나는 광주를 그리워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 세계는 안온함과 평안함은 있을지 몰라도 더 이상의 성장도, 발전도 없다는 생각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까닭이다. 모든 것들이 익숙하고, 포근하며, 친숙한 고향을 마다 할 자가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 분명하지만, 또한 그러한 고향에 대한 가출의 모험 없이 그 어떠한 창조도, 새로움도 탄생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탄생 2주년을 맞는 '시민의 소리'도 그런 면에서 끊임없이 화려한 가출을 꿈꾸는 광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에 빠진 자가 자신으로부터 탈출해서 그의 연인에게 온통 스스로를 받치는 행위와 같다.

자기부정과 자신의 고유한 자아에 대한 부인 없이 원하는 사랑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기존의 광주에 대한 자기부정 또는 부인이 감행될 때만이 완전히 새로운 광주를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한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유무형의 온갖 금기와 타부가 자신들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곳이 바로 고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자칫 고향은 'A는 A'일 뿐이라는, 동일성의 원칙이 되풀이되는 공간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이미 주어진 특정한 사물이나 현상은 그 자체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존재하는 것 모두가 특정 시점에서 인지될 수밖에 없는 곳이 고향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만큼 '시민의 소리'가 그 나름대로 탄탄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기존의 언론구조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음은 능히 짐작가는 바이다. 무엇보다도 초기의 의욕과 결단과 달리, 자신들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인력과 중력에 끌려가는 것도 자주 경험했으리라는 것도 역시 짐작가는 바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러나 '돌이 돌'일 수밖에 없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과 동일한 세계에서는 아무런 창조도, 발전도 없다. 예컨대 '돌은 나무가 아니다'와 같은, 기존의 광주와 구별되는 어떤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확보해내지 못하는 한 '시민의 소리' 역시 자신들이 그토록 닮기 싫어하는 대상을 닮아있는 것에 불현듯 놀랄 날도 있을 것이다.

<시민의소리> 금기와 타부에서 정체성 찾자

따라서 '시민의 소리'는 우선 자신들을 구속하는 그 모든 금기와 타부에 대한 도전 또는 거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내야 한다. 예컨대 '광주는 예향이다'는 말이 있다면, 정말 그러한가 되물어야 한다. 또 '광주시민은 위대하다'라고 했을 때, 행여 우리가 자아도취의 상태는 아닌가 의심을 던지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만 그친다면 원치 않는 예속과 비극적인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광주는 예향이 아니다'라는 부정이 단순한 부정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학향(學鄕)운동'과 같은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데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더 이상 예향이 아닌 광주의 질적인 비약은, 바로 기존의 타고난 감성과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며 공부하는 풍토의 부재에 있다는 식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시민의 소리'를 기대하는 것이다.

단순하다면 매우 단순한 이러한 원칙을 고수할 때, '시민의 소리'는 그야말로 참다운 광주 '시민의 소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여전히 그 정체를 감추고 있는, 온갖 고난과 시련, 죽음과 제의로 얼룩진 역사적 뿌리를 가진 광주의 소리와 빛을 전파하는 파수꾼이 될 것이다.

특히 크거나 낮은, 높거나 깊은 온갖 소리와 부름에 정성되이 응답하고 귀기울여 들을 때 '시민의 소리'는 의식차원을 넘어 저 깊은 무의식의 소리까지도 대변하는 명실상부한 '시민의 소리'가 될 것이다.

/임동확(시인. 한신대 문예창작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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