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철' 들지 않은 삶
세상에 '철' 들지 않은 삶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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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인 삶이라는 것.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을 말하리라. 하지만 세상에 적응하고 길들여져, '철'이 든다는 것은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인가. 문득 세상에 길들여진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스스로 놀라곤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남을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살아남으면 아주 자~알 살 수 있다. 밥을 하지 못해도, 집을 짓지 못해도, 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먹기만 하고, 쓰기만 하면 되는,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세상이지만, 스스로 사는 삶은 아닌 것 같다.

살아가는 기본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자립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아파트에 살면서, 기성복을 사 입고, 하루 한번은 식당에서 밥 먹는 나지만 가끔은 꿈꿔본다. 다양성과 주체성이 있는 세상을, 그리고 그렇게 사는 나 자신을...

©양희연
그 꿈속에 살고 있는 김재철(45)님.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가 죽염(竹鹽)만 굽는 줄 알았다. 그 다음에는 집도 짓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서는 농사도 짓고, 약초도 캐고, 천연염색도 하고, 효소도 담그고, 벌이랑 닭도 키운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놀라운 듯 '그것도 하세요?'하며 묻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바보 같은 말이었다.
놀라운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할 수 있고, 또 해야하는 일을 그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놀라운 세상에 나는 살고 있었던 것이고...

스스로 지은 집에서 기본적인 생활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 맞으며 살아갈 뿐.
거창한 수식어는 하나도 필요 없다. 단지 마음이 넓고 깊어 그 누구도 받아들인다는 것. 그래서 참 다양한 친구가 있다는 것,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 있고,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한 그런 사람이다.

정성껏 죽염을 구워 사람들과 나누고,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집 짓는 기술을 나누어주는 그의 삶은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 모든 것이 산업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그의 철학이 특별해 보인다. 20여 년 전, 그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독재와 부정이 만연하고, 민주주의 열망이 드높았던 때, 세상은 대학을 다니던 그 혈기있는 청년을 가만두지 않았다.

©양희연

그의 '정의'라는 행동에 세상은 '정학'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부모님께 죄송함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산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그는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던 마음을 접고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약초를 캐고, 죽염도 굽고, 농사짓고... 한 발짝 떨어져 보니 세상이 더 잘 보이더란다.

그는 지리산 시절 5년여를 자신의 운명을 바꾼 때라고 말한다. "비웠지. 비우려고 노력할 때는 잘 안 비워지더니 포기하니까 비워지더라구. 그러더니 다른 것이 채워졌어. 사는게 그렇더라구. 뭔가를 찾으려 하고 채우려 했다면 그렇지 못했을거야."

그때, 자연학교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지금이야 생태니 대안이니 하는 것이 익숙해졌지만 당시는 산업화의 물결이 거센 때 아닌가. "30대 초반의 사람들이 모였어. 알음알음으로. 농사, 건축, 명상, 교육... 다양한 관심들이었지만 '뭔가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지. 그 젊던 사람들을 지금은 지면(紙面)이나 강연회장에서 만나곤 하는데 다들 각자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어."

©양희연
귀농운동본부 이병철 본부장, 정경식 정농회 부회장, 돈을 버리고 매일 축제로 사는 한원식님, 간디학교를 창립한 양희규님, 해피타오의 한바다님... 모두 자연학교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70년대 서구에서 일어났던 히피물결 같다고나 할까. 산업화의 바람이 일던 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대안적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지금은 출가한 후배가 살던 화순 가수리 만수동. 13년 전, 그는 산에서 내려와 이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지금은 포장도 되고 버스도 다니지만 결코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 깊은 그의 집에는 늘 사람으로 북적인다. 그를 만나러, 그와 이야기를 하러 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귀농을 앞두고 몇 년 동안 생활하는 사람들도 여럿이다. 그러다가 일종의 분가(?)를 하는데, 참 여러 곳에서 살고 있다. 방황하는 젊은 영혼, 인생의 전환점에 놓인 사람들. 그들을 보며 자신의 젊은 때를 바라볼까. 많은 얘기는 하지 않지만 한결같은 삶의 모습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듯 하다.

그는 모든 일에 욕심내지 않는다. 죽염제작자로 생태건축가로 그는 상당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최고를 만든다는 욕심은 없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함께 하고, 나누고, 보살피는 것. 집을 지으면서, 죽염을 만들면서, 염색을 하면서, 그는 그것을 실현해간다. 그것이 그가 꿈꾸는 세상이고, 그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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