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약없는 이별 마을길에 만장은 날리고...
기약없는 이별 마을길에 만장은 날리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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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연

강진 벗이 전시한 탐진강 수달 사진과 다른 수몰마을에서 빌린 엠프 등속을 트럭에 싣고 나오는 덕산마을 길. 만장이 아직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수몰마을 하나하나가 적힌 만장들은 이제 비탄에 잠겨 춤추는 듯 처연해 보입니다.

오래 비워둔 집에 돌아와 마당을 쓸고 밀린 옷가지 빨래를 하러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계곡으로 갑니다. 아내가 사준 감물들인 저고리에 만장을 쓰다 묻은 페인트 자죽이 여기저기 어지럽습니다. 아마도 아내에게 한소리 들을게 분명합니다.(예전에는 천에 달걀 흰자위로 글씨를 쓰고 밀가루를 뿌려 만장을 만들었다는데......) 호주머니에서는 주로 언론사 기자들이 주고간

명함이 한 웅큼 나옵니다. 조금 어색하고 쓸쓸해집니다.
빨래를 하고 돌아와 조금 있으니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핍니다. 하얀 연기가 굴뚝을 타고 기분좋게 빗속으로 날아 오릅니다.이제야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축제가 너무 길었나 봅니다. 40여일을 문화제가 열린 덕산마을에서 살다시피 했으니 말입니다. 돌아보니 날마다 마을 사람들과 술 마시고 얘기하며 일하고 놀았습니다. 일과 놀이가 어느 순간 즐겁게 만나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지역문화 활동의 관건은 분명 그 지역 사람들과의 진(眞)하고도 야(野)한 통정(通情)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더구나 수몰마을에서 열린 이 번 문화제는 더더욱 마을 사람들과의 끈끈한 통정이 필요한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고향에서 쫓겨나는 고통과 고향집을 팔아먹은 죄책으로 심란한 내면풍경을 지니게 된 마을 사람들과의 통정은 사실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처음 장승을 깎기 시작할 무렵에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뒷전에서 구경만 하는 것입니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장승을 깎아 마침내 마을 입구에 장승이 서자 마음의 빗장을 여는지 조금씩 달아오르는 분위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마을 할아버지들은 글씨를 쓰고 할머니들은 바느질을 해 만장을 같이 만들어 갔습니다. 우리는 이제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며 관심을 가지는 연애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마을의 연애는 조금은 일방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의 욕망이 지나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수동적인 태도로 마지못해 따라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많은 준비 없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외부의 의식화(?)없이 자연스럽게 주체가 형성되는 공간이 무엇일까 생각한 것입니다.

©양희연

우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기억으로만 남은 당산제를 제안했고 집집마다 낡은 사진첩을 꺼내 가족사를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던 처녀시절과 새색시시절의 몸과 마음의 부끄럽고도 당당한 관능을 상기시키는 중로보기를 발견했습니다.(중로보기는 장흥지역에서 전해 내려온 강강수월래입니다. 보름달이 뜨는 추석이면 한 마을 여인들이 이웃 마을로 가 그 마을 여인들과 이런저런 내통을 한 다음 손에 손을 잡고 마을로 데려 옵니다.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으며 맘껏 춤추고 노래하며 강강수월래를 하는 것입니다.)

마을 이장님은 늙은이들만 남아서 할 사람이 없다고 자꾸만 잘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큰 비중을 두지 않았기에 포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할머니들을 선동하기로 작정합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강수월래 얘기를 꺼내 할머니들 마음을 달뜨게 만들었습니다.

팔십, 구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실제 강강수월래를 하시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할머니들이 오,육십 먹은 젊은(?) 아낙들을 자연스럽게 설득하면서 분위기를 잡았습니다. 행사 전날에야 찾아간 신풍마을 아짐들은 젊은 시절 뛰어 놀던 얘기를 하며 의외로 쉽게 승낙을 하였습니다.

중로보기 얘기를 길게 하는 것은 어설프게 이뤄진 강강수월래가 의외의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보고 참여한 사람 모두가 좋았답니다. 무엇보다 마을의 수몰과 함께 사라질 뻔한 중로보기를 어쩌면 가까스로 살려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신명을 안고 마침내 진혼굿이 밤늦도록 펼쳐졌습니다.

행사 둘째 날 마을 사람들의 노래자랑이 끝나고 우리 모두는 풍물 가락에 맞춰 춤추며 놀았습니다. 이 마을에 30여 년 전에 들어와 남의집살이하며 살고있는 오십 먹은 바보총각과 손 잡고 바보춤을 추는 데 어찌나 손을 놓지 않던지. 팔십, 구십이 넘은 할머니들도 춤추는데 우리 아들, 우리 아들하며 얼마나 즐거워 하시던지.

이렇게 해서 우리의 짧았던 슬픈 연애는 기약 없이 끝났습니다. 마을길에 만장은 아직도 바람에 그냥 몸을 맡기고 날리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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