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선물
아들의 선물
  • 시민의소리
  • 승인 2024.01.0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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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늘 가는 작은 미용실을 하는 아주머니가 아들을 외국에 유학 보냈다. 유학비를 대느라 죽을 둥 살 둥 일해서 결국 졸업시키고 아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작은 성공 스토리라 할 만하다.

아들이 첫 월급을 받게 되었을 때 남편이 아들에게 ‘엄마가 고생해서 유학을 보내 취직했으니 첫 월급으로 명품 가방을 선물하면 어떠냐?’고 한마디 했다. 아주머니는 살짝 기대를 했다. 사실 명품 가방이 여러 질이긴 하지만 괜찮은 것으로 사서 드릴 만도 한 이벤트다. 아들은 결혼하고 집을 장만하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며 명품 가방 대신 속옷 한 벌을 선물했다.

아주머니는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출발하려는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속으로 살짝 서운했다. 남편이 명품 가방을 말했을 때는 아주 조금 기대했다. 아들한테서 첫 월급 탄 선물로 빨간 속옷 한 벌을 받고는 아들이 직면한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서운하기도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마치 내 일인 듯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수년간 수억원을 들여 유학을 보냈고, 그러느라 못 먹고 못 입고 올인해서 아들을 졸업시켰는데, 선물치고는 2퍼센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평생 자식한테 봉사하는 존재로만 살아야 하는가. 몇천만원 하는 명품 가방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잘해야 2, 3백 하는 것을 생각했을 터인데 통 크게 명품 가방을 선물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주머니는 얼마나 좋아했을까.

나는 이 생전 아내한테 명품 가방 같은 것을 선물한 일이 없다. 수십 년을 같이 살면서도 아내를 눈물 흘리게 할 그런 감동의 선물을 한 적이 없다. 아들 둘을 기르고, 학교 보내고, 유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이러다가 인생이 명품 가방이 필요 없는 나이대가 되어 버렸다.

후회가 산처럼 크다. 요새 유행한다는 명품 가방이란 것은 모르긴 하지만 유통기한이 50대 나이 정도에서 끝물이 아닌가 싶다. 더 나이가 들어 들고 다니면 별로 어울리지 않고 되레 멋쩍어 보인다. 이건 순전히 나 혼자 생각이다.

명품 가방만 선물이냐고 타박할 것이 아니다. 인간의 기쁨은 무슨 자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하기 좋게 속옷도 훌륭한 선물이라고 고집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장면에서 아들이 어머니의 기대를 비껴간 것은 ‘아니올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가방이면 가방이지 명품 가방이 뭐란 말인가 할 정도로 무딘 사람이 아니다. 가방의 용도로만 본다면 값싼 가방이면 어떠냐 싶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게 실용적으로만 따질 수 없는 일이 많다.

만일 아들이 유학 보낸 그간의 고생에 보답하는 어머니에 대한 선물로 명품 가방을 드렸다면 어머니는 미용실 한쪽에 놓아두고 누가 물어보면 ‘우리 아들이 유학 갔다 와서 취직 선물로 준 것’이라고 자랑했을 것이다. 그때 아주머니는 얼마나 소박한 행복감을 느꼈을 것인가.

나는 오래전 어느 해 어머니께 선물을 해 드리려고 돈을 마련해 어머니 집을 찾아갔다. 멋진 옷 한 벌을 사드려 효도하고 싶어서 큰마음 먹고 어머니를 백화점으로 모시고 갈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됐다, 됐다’ 하시며 한사코 마다하셨다. 그때 어머니께서 한 말을 나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나이에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때깔이 안 나야”라고 하시며 주름투성이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지으시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 말씀에 울컥해서 그 순간 속으로 나를 꾸짖었다. 선물할 기회를 영영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니가 건강하면 써야. 그것이 선물이다.”

불효자는 운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않는 미용실 아주머니는 혼자서 수십 년 동안 작은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을 유학길에 보냈다.

아내는 수십 년을 다닌 단골손님이어서 이물 없이 그 사정을 터놓고 말했던 모양이다. 아내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고 한다. 아무한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나는 신이 있다면 분명히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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