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섬진강 시인', 그 오묘한 사랑의 비밀
조선일보와 '섬진강 시인', 그 오묘한 사랑의 비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호남인으로서는 드물게 조선일보의 총애를 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하기로 유명한 신문인데, 산골 초등학교 교사 시인에게 각별한 사랑을 베풀고 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조선일보가 미국을 사랑하고, 이문열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불문가지이다. 조선일보가 왜 그들을 좋아하는지 아는 방법은 그들이 싫어하는 부류를 추적해보면 쉽게 찾아진다.

조선일보는 북한을 싫어한다. 북한을 돕는 일은, 정치적 결정·통일운동적 발상·인류애적 접근·종교적 박애를 상관치 않고 무조건 반대한다. 만일 자신들의 세계관에 어긋나면 무차별 융단폭격을 가한다. 이 폭격에 살아남을 수 있는 자,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없다.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까지 예외가 아니니, 나머지 범부들이야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북한을 돕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는 신문

조선일보는 강준만·노무현·시민운동 단체·한총련·김대엽도 싫어한다. 이들이 조선일보에 미운 털 박힌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개혁·지역주의 타파·건전한 시민사회건설·병역비리 의혹 추구에 힘쓰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류'와 '일류'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며, '절대 다수의 평등'을 반대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결코 '메인 스트림'이 아닌데도 조선일보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 얼핏 김용택 시인이 오래도록 섬진강을 노래해왔기 때문으로 이해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를 이유가 있을 터인데, 조선일보는 어떠한 경우에도 제 입으로 그 비밀을 털어놓는 법이 없으니, 어설픈 추리력으로 들춰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첫째, 김용택 시인은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억압과 자유에서 빗겨나 있다. 항상 섬진강의 유유자적과 정겨움만을 노래할 뿐이다. 세상이 썩어문드러져도 섬진강은 언제나 아름다울 뿐이다. 조선일보는 복잡한 인문학적 고뇌를 싫어한다.

서정과 전라도, 조선일보식 파라독스

둘째, 김용택 시인이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선일보식 파라독스'이다. 조선일보는 전라도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만사 '역설'이 없으면 너무 단조롭고 재미없는 법! 조선일보도 전라도 출신 한 두 명은 키워줄 수 있는 여유와 대범성을 과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반골 시인'이 많기로 유명한 전라도 땅에 조선일보 분위기에 딱맞는 서정시인이 있으니, 그 희귀성이야 보배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 김용택 시인의 사회인식에 대한 무지에 가까운 능청스러움 때문이다. 그에게 "이 시대의 안티조선운동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치 않다. 최근 어느 행사장에서 누군가 "조선일보 안보시죠?"라고 묻자, "조선일보가 뭐 그렇게 나쁜 신문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영혼이 살아 숨쉬지 않는 순수와 서정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역사적 사유가 배제된 문학적 상상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야 알 것 같다. 조선일보와 '섬진강 시인'의 그 오묘한 사랑의 비밀을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