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질교육 간곳없고 대회용 특기자만 양산
소질교육 간곳없고 대회용 특기자만 양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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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안타깝다"
지난달 실시된 전남대학교 오월문학상 당선작 표절 사건을 접한 문학상 심사위원 채희윤 교수(광주여대 문예영상학부)가 한 말이다.

더구나 이번에 '표절'로 밝혀져 당선이 무효된 소설은 포항 모 고등학교 재학생의 작품. 오월문학상을 주최한 용봉편집실측에 따르면 그 학생은 이미 전국의 각종 경시대회에서 5-6 차례 정도 기성 작품 표절로 무리를 일으킨 사례가 있다고 해 더 큰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도대체 왜, 그 고등학생은 '표절'이라는 방법까지 써가며 문학상이나 백일장에서 입상하고자 했을까. 무엇이 어린 나이의 그 학생에게 목적 달성을 위해 '편법'과 '불법'을 거리낌없이 이용하게 만들었을까.

경시대회 수상 특례입학에 유리 "너도 나도 타고보자"

우선 무리를 빚은 이번 문학상 참가 고등학생의 담임 선생님 말을 들어보자.
"경시대회 수상 성적이 특례입학에 유리하니 무조건 '상장'을 많이 타려고 하는 학생의 욕심이 특기적성 입학의 구조적 맹점과 맞물려 이번과 같은 극단적인 일이 벌어진거죠".

실제 이번일은 최악의 극단적 사례이다. 이번 일만 가지고 특기적성 입학제를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음달부터 시작될 2003년 대학 입시, 예년에 비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특기적성 입학 추세를 고려할때 이번 사건을 통해 현재 특기생 교육의 문제를 되짚어 볼 필요성은 충분하다.

특기자 전형 제도는 지난 98년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추진한 '교육비전 2002: 새학교 문화창조' 정책에서 비롯됐다. 이는 특기 한가지로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는 '대입 무시험 전형'이라며 눈길을 끌었다.

오는 9월부터 시작될 대학별 수시모집 요강을 살펴보면 특별전형 비중이 76.5%. 작년 30%에 비해 대폭 늘어난 수치이다.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등도 수학, 외국어, 문학, 컴퓨터 등 각종 분야의 특기생을 100여명 안팎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특기자 입학제 '긍정적 취지', 교육 현장에서는 아직 '이상일 뿐'

전남여고 이철형 교사의 "재능있는 학생들의 소질을 개발하고 대학 진학 후 개별화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의견처럼 특기자 전형 입학제도 취지는 '바람직' 하다. 하지만 교육 현장의 현실은 이런 '이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과목별 특기를 제외한 일반적 '특기적성'은 '수능 시험'처럼 석차화시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분야이다. 때문에 대학측은 각종 경시대회 수상 여부를 '수치'로 학생의 '특기수준'을 평가하고 있다. 전남대학교 입학관리처는 "경시대회 입상 여부에 따라 특기전형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 수상 내역은 특기자 전형 합격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경시대회에 매달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 '경시대회 입상이 곧 대입'이라는 생각에 특기가 있는 학생들은 관련분야 경시대회 준비에 온갖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

문학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송승환씨(24·고려대 국문과)는 "몇 천명이 몰려드는 경시대회에서 입상한 사람은 소수이다. 또 어렵게 입상한다 해도 실제 대학에서 점수로 인정치 않는 대회들도 허다하다"며 남발되는 '경시대회'문제를 지적한다.

대학들, 우수학생 유치 홍보 효과 노려 경시대회 남발

현재 대학 주최의 각종 경시대회는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수학, 과학, 문학 등의 기본적인 경시대회 뿐 아니라 이제는 '독서 경시대회'까지 등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수 학생 유치 및 대학 홍보 효과를 이유로 추진되고 있는 대학별 경시대회, 하지만 이러한 '경시대회 홍수'는 학생들을 대입을 위한 '경시대회용 특기자'로 만드는 폐해를 낳기도 한다. 이번 오월문학상 표절 같은 경우가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백일장용 작품'이란 말이 있다. 백일장에서 상을 잘 받을 수 있는 틀에 따라 단어 몇개 바꿔 작성해 응시하는 것이다"라는 채희윤 교수는 창조적 사유과정인 '글쓰기'가 현입시제도 속에서 왜곡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규격화된 입시제도 속에서 왜곡되는 특기자 교육

미술학을 전공하고 있는 서민영 씨(21 전남대)는 "미술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려면 눈, 코, 입을 입시미술에 적합한 공식에 맞춰 그려야 한다"며 현재와 같은 입시 풍토가 지속되는 한 특기적성 입학제는 현실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물론 이 제도가 아직 시행단계라고 본다면,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른 시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규격화된 입시 제도 그늘아래서, 창조성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특기적성마저 붕어빵처럼 정형화되어 가는 현실. 이를 단순한 '시행착오' 과정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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