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에 대한 고민
'책 읽기'에 대한 고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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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라……. 이 세상엔 수많은 책들이 있다. 책을 분류하는 기준만 해도 당장 수십 가지가 머리에 떠오른다. 시, 소설, 인문, 사회, 교육, 여행, 예술, 고전, 자연과학, 판타지 등등. 그 중에서 한 권을 골라내어 소개를 하라니…….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좋은 책일수록 소개는 더욱 어려워진다. 좋은 책은 한 가지의 해석만을 허용하지 않으며, 그래서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 어떻게 그 변화무쌍한 맛을 원고지 여남은 장에 담아 낼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책을 소개한다는 것은 글쓴이를 모욕하고, 나 자신을 포함한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며, 나의 관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특히 그 책 소개란 것을 '검증된'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서당에서 3년 노닥거린 풍월만 가진 사람이 한다면, 그것은 기만 중의 기만이요, 폭력 중의 폭력일 것이다.

하지만 서당에서 3년을 노닥거리면 개도 (어찌된 풍월이든) 풍월을 읊는다고 했거니와 사람인 내가 개보다는 아마 나을 듯도 하여 이렇게 모험을 감행한다. 부디 여러분의 많은 양해가 있으시길.

책소개의 곤혹스러움

'청년글방'이라는 서점에서 '도를 닦으면서'(그렇다, 요즘 서점에 관계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도를 닦는 것에 비견될만하다) 뼈저리게 느낀 점은 정말 요즘 사람들이, 특히 책과 가장 친해야 할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학교 도서관의 책상 위에는 영어와 컴퓨터, 그리고 취직에 필요한 각종 자격증들에 관한 책들만이 펼쳐져 있고, 도서관에서 소설이나 시집을 펴놓고 읽는 사람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어쩌다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소설은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소설이거나, 지금은 다소 시들하지만 모 TV프로그램에서 선정한 공모 작가의 '…언니}, 박모 작가의 '…싱아…'일 확률이 십중팔구다(요즘은 여기에 히딩크, 홍명보 등을 다룬 '월드컵 특집'들이 가세하여 베스트 셀러 목록은 참으로 가관이다).

여기서 판타지 문학을 비하하거나 언급된 소설들의 작품성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모두가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게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책을 아예 안 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고? 나아가 전 국민이 같은 책을 읽음으로써 모두가 일정한 교양 수준에 도달하게 되고, 같은 화제를 공유함으로써 국민 대화합의 장이 마련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희박하거니와, 이를 살짝 뒤집어 보면 파시즘과 맥락이 통한다.

유행이 된 책읽기

나는 왠지 자꾸 우리나라 사람들이 파시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열풍이 불면 너도 나도, 언니도 오빠도, 서로 질세라 그에 휩쓸리는 모습, TV에서 추천한 책들만 달랑 읽고 나서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교양을 쌓았다는 허영과 허위의식에 물든 채 안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지금과 같은 독서 행태는 결코 진정한 책읽기라 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언니'와 '싱아'를 읽은 이들이 공모, 박모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나아가 90년대 여성 소설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또 판타지 매니아들이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이나 보르헤스의 '픽션들'과 같은 판타지 성향이 짙은 '고전'(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읽지는 않은 책을 일컫는 말)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다시 말해, 주어진 코드에 우리 자신의 욕망이 접속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뻗어 나간다면 말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독서를 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삼천포가 길어져 정작 책에 대한 얘기를 못해 버리고 말았다. 책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직접 읽어보는 것인 바, 언급된 책들 중, 구미가 당기는 책을 골라 읽어봄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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