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
섬,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8.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나 섬으로 가는 길은 설레임이 있지만 그와 더불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기상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반대급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그 여행을 매끄럽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거문도를 향하는 길.

빨라진 배는 바다에 선체를 파묻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미끄러지듯이 비행하여 12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문도까지 두시간여만에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사실 상상을 하기 어려웠던 일들이다. 아직도 배를 떠올리면 배속이 울렁거리는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게 지금의 수중익선은 리무진버스와 같다는 것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일은 아무런 동요 없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쾌속의 질주는 배의 갑판이나 선미에 서서 가야 할 머나먼 여정을 바라보는 것이나 지나온 괘적을 시원스럽게 가르며 포말로 부서지는 물결을 바라보는 낭만을 조금씩 앗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거문도행 쾌속선은 배의 선미나마 승선객에게 내어주고 있다.

©전고필

남도의 섬, 다도해의 끄트머리

배에 탑승한 관광객들은 저마다의 가슴에는 이미 섬에 대한 나름대로의 한껏 부푼 기대감이 부풀어오르고 있었지만 혹여 그 마음을 들킬까봐 내밀하게 표현을 삼가고 있을 뿐이었다.

거마도라 불리웠던 이 섬이 거문도로 불리게 된 것은 청나라의 제독 정여창을 탄복하게 한 대학자 김 유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한다.다도해의 끄트머리에 있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섬이 이처럼 내 나라 사람의 눈에 띄여 아름다운 칭송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먼저 인정을 받았다는 그 역사는 마침내 1885년 이 섬의 이름이 갑자기 헤밀턴 섬이라 는 명칭으로 불리워지는 부조리함까지 당하게 되기도 했었다.

러시아의 남진을 막고 대륙침략의 교두보를 삼을려는 제국주의 영국의 야심이 이 섬을 정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무단 점거한 2년 동안 이 땅에 남겨놓은 흔적은 아직도 영국군 수군 3인의 묘지에 담겨 있어 그 나라를 대표하는 대사가 다녀가곤 한다지만 그 동네에는 그들이 영국의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성욕을 위해 바다를 건너 색주가의 여자와 하룻밤을 위해 바다를 건너오다 죽은 이들이라고 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거문도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것은 사실 이런 역사에 대한 정확한 바라봄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제나 여행이 자신의 심미안을 가장한 사치스러움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다시 보고 사물에 대해 스스로의 안목을 키우며, 그 속에 깃들여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고 여기는 이에게 있어서 거문도는 이런 역사의 상흔을 명확히 보는 가운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세명의 묘가 남아 있는 영국 수병의 묘지를 보면서 국운이 쇠퇴한 조선의 그 시절 정황과 현 시대를 다시 상기해 보며 거문도 사람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수산물 공판장에 들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고필

아직 해가 떠오르기에는 이른 시각, 벌써 거문도는 항구에 들어오는 낡은 선박들의 엔진 소리가 잠을 깨운다. 이른 저녘 바다를 향해 집어등을 달구며 바다로 향했던 선박들이 들어오는 소리이다.
그들은 밤을 세워 갈치를 잡아오는 도중이었다.

갈치회맛, 바다가 주는 미각의 선물

6월부터 8월까지 갈치가 가장 즐겨 찾는 길이 바로 거문도 앞 바다지만 이제 그 많았다던 갈치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8월 초부터 겨우 잡히기 시작했다는 갈치는 그 가격만 몇배로 뛰어 올렸 놓은 상황이었다. 10kg에 시가로 10만원 정도에 달하니 사실 어지간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거문도에서 갈치를 먹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현지의 싱싱한 어획물 특히나 횟감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거문도의 은갈치를 먹는 것은 상상만으로 즐거운 일이다. 입에 넣으면 그대로 살살 녹는 음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있었는가 비교해 볼수 있으니 말이다.백도의 아름다움에 취한다면, 갈치는 다도해의 바다가 주는 미각의 선물로 취하기에 가장 적합한 선물이라 할 수 있다.

8월의 거문도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갈치회맛과 바다가 주는 푸른 융단 같은 물결속의 백도를 찾는 길은 이 땅의 남도가 간직한 신비한 미궁의 한 자락에 불과하지만 넉넉하고 소담하여 그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서른 아홉 개의 섬으로 구성된 명승지 백도를 찾아가는 길에는 여러척의 유람선이 있지만 유념해야 할 것은 똑 같은 백도를 누가 설명하는가에 따라 내 가슴에 파묻혀 오기도 하고 거기 그 자리에 그냥 버려두고 오는 수도 있다.

선택은 모두 여행자의 몫이다. 입담 좋고 그 지역의 역사에 능통한 뱃머리의 가이드를 선택하는 것이 백도를 온전하게 구경하고 오는 길이다. 간혹 가이드를 잘못 택하면 보는 눈 따로 듣는 귀 따로여서 결국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이니 말이다.

(여수항에서 거문도까지 하루 여섯차례 초쾌속선과 쾌속선이 운항하고 있으며, 거문도에는 쾌적하지는 않지만 민박집을 비롯하여 장급 여관 등이 있어 다도해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지역민의 삶을 함께 보고 올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