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론]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을까?
[문화칼론]첫술부터 배부를 수는 없을까?
  • 김하림
  • 승인 2002.07.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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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일이다. 뉴욕에 다녀온 한 지인이 현대미술관에서 사왔다고 하시며 기념으로 선물을 주었다. 포장을 뜯고 보니 스카프였다. 연한 하늘색 계통의 스카프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바탕에 깔았는데 만든 곳은 일본이었다. 미국에서 파는 문화상품이 이집트 문화를 기초로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문화는 이처럼 지역이나 민족을 토대로 하되 이를 초월하는 것이고, 문화상품은 결국 '창조적 아이디어'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이 스카프가 다시 떠올랐던 계기는 최근 광주광역시의 '(재)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장' 채용에 관한 공고(제232호)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에서는 지역의 소프트웨어(S/W), 정보기술(IT), 문화콘텐츠(CT) 등 정보통신 및 문화산업을 종합적으로 지원·육성하기 위해 설립중인 재단법인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을 대표하고 직원의 임면 등 직무를 총괄할 원장을 다음과 같이 공개모집하오니 유능한 인재의 많은 응모바랍니다."는 적지 않은 연봉과 막강한 파워를 지닌 '원장'을 공모한다고 공고했고, 듣자하니 현재 접수는 끝났는데 5명 정도가 응모했다고 한다.

일본서 만들고 미국서 파는 이집트 문양 스카프

광주시가 '광산업'과 '문화산업'이라는 두 축을 21세기 광주 발전전략으로 설정하고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정보·문화산업진흥원'을 설립하고 원장을 공모한다는 점은 바람직하다. 전문성과 경영마인드를 지닌 경력자가 책임을 지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보와 문화의 '행복한 동거'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우려스럽기도 하다. '진흥원'이 담당할 주요 업무 내용을 보면 "정보통신·문화산업의 육성을 위한 중장기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 정보통신산업 기반조성 등 제반 활성화 사업, 정보통신산업 창업지원 및 육성, 정보통신산업 전문인력 양성 및 지원사업, 정보통신산업 발전을 위한 마케팅 지원, 광주지역 소프트웨어 산업시설 및 장비의 운영 지원, 정부·지방자치단체 등의 위임·위탁 및 용역사업 등"으로 되어 있는 바, '문화'보다는 '정보통신' 쪽에 비중이 많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정보통신'에 관한 전문성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문화를 '산업'화하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전문성이 더 요구된다고 보여진다. 지역의 문화예술이 지니고 있는 전통과 역사를 깊이 인식하고, 이 장점을 어떻게 차별화하여 진흥시키고 보편화하여 그 우수성을 '산업'화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의 '스카프'가 입증하듯이 문화예술에 대한 '창발적 아이디어'가 문화산업의 진흥에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산업화가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또 다른 차원에서 논의가 전개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화와 정보의 행복한 동거를 위하여

2002년 5월 1일자의 "광주시 재단법인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3120호)"을 보면 1조는 "정보기술, 문화컨텐츠 등 첨단 고부가가치산업을 육성하고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하여 지역의 정보·문화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설립된 광주광역시재단법인광주 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이라 한다)의 지원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사업에 관한 제3조는 "1. S/W산업 육성계획 수립 및 시책 개발, 정부사업의 유치, 2. 창업지원시설 입주업체 지원, POST-BI 사업관리, 3. 영상산업의 지원시설 등 문화산업시설의 운영 관리, 4. 기타 재단의 목적에 필요한 사업 등"으로 목적에서 강조된 문화산업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기타 재단의 목적에 필요한 사업'의 범주에 '문화'부문이 들어갈 것임은 틀림없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이렇게 되어서야 광주시 발전전략의 핵심축인 '문화산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응모자에게 "세부추진계획과 계량화 가능한 평가지표"를 요구하고 "임기중 달성해야 할 경영목표 달성도를 매년 평가"한다는 점에서 이런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기 바라며,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냐는 반문보다는 첫단추를 잘 꿰었다는 칭찬이 자자하기를 기대한다.

/김하림[광주전남문화연대 대표, 조선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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