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반창회
어떤 반창회
  • 문틈 시인
  • 승인 2022.12.09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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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아직도 한창인데 사람들은 더 이상 코로나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하다. 내게도 3년만에 연말 송년회 모임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오고, 여기저기서 만나자는 전화도 온다. 잊지 않고 연락을 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그러나 나는 코로나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코로나를 무시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하도록 결심을 했든 어쨌든 나는 ‘코로나 저승사자’가 우리집 현관 앞을 지키고 있어서 나갈 수 없어 미안하다고 전한다.

사실 나도 그런 모임들에 나가고 싶다. 집에 틀어박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지내는 연금상태 생활이 편하지 않다. 극한 직업 노동자처럼 힘들고 지친다. 하지만 나갔다가 코로나에 감염이라도 되면 그러면 어떡할 건가. 나는 기저병이 있어 위험분자에 속한다. 살아남는 것이 먼저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생이란 살아남는 것이 목표라면 너무 즉물적인가.

지인 한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기의 선배 지인이 반창회 갔다 온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마도 송년 모임에 나오도록 나를 설득코자 한 이야기 같다. 지인의 선배 지인이 중학교 반창회에 갔는데 나이대가 77세 그룹이었단다.

참석자는 까까머리였던 1학년 1반 전체의 3분의 1 정도. 다른 3분의 1은 유명을 달리했고, 마지막 3분의 1은 아프거나 요양소에 있거나 외국거주 상태다. 머리가 하얘진 64년 전 중학교 1학년 동창들은 앞으로 11년 후면. 88세로 미수(米壽), 그 후로 11년 후면 99세 백수(白壽)가 된다. 그때까지 살아남아서 한국이 통일되는 모습도 보고, 인간이 화성에 가는 모습도 보고, 그렇게 즐겁게 살다가 가기로 했단다.

나는 지인의 선배가 했다는 멋진 반창회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생은 끝이 정해져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끝이 없고, 끝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생업에서 은퇴했다고 해서 인생에서 은퇴한 것은 아니다. 직장과 사회생활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나이 들어 노년의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남북통일, 인간의 화성 여행 같은 이야기는 가슴 설레는 꿈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공상에 가까운 그림일 수도 있지만 인생은 늘 높은 곳, 먼 곳을 향하여 가는 여정이 아니던가. 꿈을 잃으면 인생은 시들고 끝이 가까이 보인다.

나는 코로나가 들어오기 전 어느 해 처음으로 고교 동창회에 나갔다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모두가 머리가 희끗해진 팍 늙어 있는 모습이 나를 경악케 했다. 자기 나이 든 줄은 모르고 남 나이든 것 보고 놀란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세월은 잔인할 정도로 어제의 홍안을 오늘 쭈글쭈글한 얼굴로 만들어 놓는다.

반창회 이야기를 듣고 그때 일이 퍼뜩 떠올랐다. 세상에 태어나 풍진 세상을 용케도 살아남아 반세기도 더 전 어릴 적 동무들을 다시 만나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아마도 반창회라는 코흘리개 시절의 동무들이어서 그런 무지개 같은 이야기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척 가슴이 설렜다. 마치 내가 그 반창회에 갔다 온 것처럼 갑자기 내 앞에 끝없는 여정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오랜만에 옛날 직장생활을 같이한 동료들, 고향이 같은 언론계 출신들, 세월을 거슬러 소년 시절의 동무들을 만나는 송년회 모임에 가는 일이 무척 그립다.

지인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만나 밥도 같이 먹고 일생생활을 하는데 내가 코로나가 무섭다고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나는 지나치게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생을 유리구슬이 깨질까봐 조심히 다루듯이 늘 그렇게 살아왔다. 나도 인간이 화성에 가는 여행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코로나가 다시 대유행중이다. 흡사 나를 표적삼아 돌아다니는 느낌이다. 그래서 송년회 같은 그리운 모임들이 있다고 해도 나는 가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늘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 지금은 집안 여행자로 살지만 먼 날의 여정을 꿈꾸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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