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나는 걷는다
  • 문틈 시인
  • 승인 2022.09.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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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산다. 걷지 않는 날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기분이 찜찜하다. 

하루 1만보를 걸어라, 맨발로 흙길을 걸어라, 걷는 속도를 숨이 찰 만큼 빨리 걸어라, 빨리 걷다가 천천히 걷다가 조절하면서 걸어라, 식사 후 1시간 30분 이내에 걷기를 시작하라, 하루 걸음 수가 2000보 늘어날수록, 사망률은 8%,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은 10%, 암 사망률은 11%를 낮출 수 있다, 등등 걷는 것에도 여러가지 성가신 조언들이 따라붙는다. 

여러 해 전에도 걷기 이야기가 극성맞게 나와서 걷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떠밀리다시피 걷기를 시작했다. 그때 어찌나 열심히 걸었던지 엄지발가락 모양이 달라지는 사고가 생겼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걷기 열품이 잦아들고 나도 시큰둥해져서 슬그머니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랬는데 요즘 다시 걷기를 권유하는 뉴스가 차고 넘친다. 걷기가 좋다면 시도때도 없이 좋은 것이지 무슨 유행처럼 한번 소용돌이치고 지나갈 일이 아니다. 사실은 오래 전부터 걷기를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몸이 안 따라주어 못하다가 하도 걷기를 권장하는 소리들이 들려와서 이참에 다시 몸을 추스리고 걷기 운동에 나섰다. 딱 한 달째다. 그냥 평소 천변을 산책하는 식의 느릿느릿한 걷기가 아니라 마음을 먹고 하는 운동 차원의 걷기다. 

운동화끈을 매고, 마스크를 하고,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걷기에 나선다. 코스는 정해져 있다. 아침을 들고 곧장 나가 천변을 따라 난 인도를 조금 빠른 속도로 한 시간 정도 걷는다. 천천히 걸으며 하늘의 구름도 보고 낙엽지는 가을 풍경을 감상하는 걷기가 아니라 운동을 목표로 하는 걷기다. 

과연 이런 식으로 내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가 있을까. 나도 나를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지금까지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걷고 있다. 걷기의 효과가 몸에 나타나려면 적어도 몇달 아니 1, 2년은 계속해야 할지도 모른다. 

걷기를 하면 혈압, 당뇨, 불면증, 비만, 우울증, 치매 등에 좋다고 한다. 알려진 내용을 보면 걷기는 거의 만병통치 수준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 건강 증진의 효과도 구미가 당기지만 언제였던가 내가 아는 한 신부님이 사람이 발바닥을 보일 때는 잠잘 때와 죽어 있을 때라고 한 말에 나는 생각의 좌표를 찍어두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은 걸어야 한다는 다소 철학적인 말에 나는 걷기 종교의 신도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나는 신부님의 말씀에다 덧붙여 나를 채근하기 위해 걷기를 해야 하는 설득 논리를 개발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목에 붙은 숨이라고 해서 목숨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것을 비틀어서 사람의 생명활동은 발바닥에 숨이 달려 있다고 간주하고 목숨 대신 ‘발숨’이라고 명명한다. 발숨. 걷기를 멈추면 종당엔 삶도 시든다. 그러니 살아 있는 한 걸어야 한다. 

발바닥이 보이면 잠들었거나 죽었거나 한 때라 하지 않는가. 무작정이라도 걸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내 생각을 이끌다 보니 걷는 것이 마땅히 내가 매일 해야 할 일상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걷는다는 것은 하늘이 내게 선물한 축복이라고 한다면 걷기 초보자가 하는 말치고는 너무 나간 것 처럼 들린다. 

어쨌든 걷기 운동을 하다 보니 이제는 꼭 해야 하는 부담이 아니라 기꺼이 나를 집에서 밖으로 내보내는 자연스런 일과가 되었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긴 하지만 걷기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걷기는 언제까지 하고 그만 끝을 내는 과제가 아니다. 내 인생 여정의 줄기찬 경험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내 스스로에게 인증하는 행위로서 걷기를 생활화하기로 다짐한다. 

인간의 삶의 최고 가치는 건강이라고 한다. 그 최고 가치를 온몸으로 실현하는 것이 걷기다. 걷기를 할 때 나는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안 보이는 분이 동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두 발바닥으로 지구를 딛고 힘차게 걸을 내일 아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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