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1) - 박조요(撲棗謠)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1) - 박조요(撲棗謠)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9.23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년에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 할걸요 : 撲棗謠 / 손곡 이달

한 마디의 농담조가 좌중의 사람들 배를 움켜잡게 만드는 수가 많았다. 어쩌면 이것은 덕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슬쩍 던지는 한 마디가 웃음바다로 만들 수도 있다. 이웃집 꼬마 녀석이 노인집의 대추를 따러 왔겄다. ‘이 녀석아, 썩 물렀거라’ 쫒아냈더니 꼬마 녀석 도망가면서 던지는 한 마디가 웃음바다 되었다. 이웃 집 꼬마 녀석 대추를 따러 왔는데, 늙은이가 문 나서며 꼬마를 쫓았더니 도리어 조롱조로 달아나면서 한 마디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撲棗謠(박조요) / 손곡 이달

대추 따러 왔다는데 꼬마를 쫒는구려

꼬마 외려 늙은이 소리치며 향하기를

내년에 대추 익을 때 얼마 살지 못하리.

隣家小兒來撲棗 老翁出門驅小兒

린가소아래박조 노옹출문구소아

小兒還向老翁道 不及明年棗熟時

소아환향노옹도 부급명년조숙시

내년에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 할걸요(撲棗謠)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 16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이웃 집 꼬마녀석 대추를 따러 왔는데 / 늙은이가 문 나서며 꼬마를 쫓는구나 // 꼬마녀석 외려 늙은이를 향해 조롱하듯이 크게 소리를 지르네 / "(영감님은) 내년에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 할걸요"]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대추를 따는 노래]로 번역된다. 대추가 어느 점 익으면 달콤한 맛을 낸다. 바람이 불고 난 다음 날 꼬마 녀석들이 대추 줍기도 하지만, 대추를 따먹는 녀석들도 있다. 흔히 대추서리라 하여 대추를 몽땅 따 가는 녀석들도 있어 할아버지가 대추지키기를 한다. 얄미운 녀석이 대추를 따러 오자 ‘네 이놈’하면서 꾸지람을 하자 할아버지를 골려 줄 양으로 비아냥거리면서 도망가는 하는 말이 걸작이다. 시인은 도망가는 녀석의 몇 마디 말을 듣고 배꼽을 쥐었던 모양이다. 이웃 집 꼬마 녀석이 대추를 따러 왔는데, 늙은이가 문을 나서면서 꼬마를 쫓아내는 모습을 보았다. 농촌이나 산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풍경의 한 모습을 선경先景이란 시상의 자리에 넙죽 놓았다. 화자는 꼬마 녀석이 도망가면서 하는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꼽을 쥐면서 이 시를 썼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 할걸요]라는 한 마디다. 어른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려는 뜻에서 쓰여진 작품을 ‘동시 동시조’라 한다면 ‘동한시童漢詩’란 이름이라면 제격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꼬마가 대추 따러와 늙은이가 쫓는구나, 꼬마 녀석 조롱하면서 내년엔 살지 못할거며’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작가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다른 호는 동리(東里), 서담(西潭)등으로 썼다. 이첨의 후예인 이수함과 홍주의 관기 사이에 태어났다고도 알려진다. 어머니가 천출이어서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원주 손곡으로 옮겨와 살았기에 손곡을 호로 삼았다.

【한자와 어구】

隣家: 이웃집. 小兒: 꼬마. 어린애. 來撲棗: 대추를 따러오다. 老翁: 늙은이. 出門: 문을 나서다. 驅: 쫓다. // 還: 돌아오다. 向老翁: 노인을 향하여. 道: 말하다. 이르다. 不及: 미치지 못하다. 곧 살지 못할 것이다. 明年: 내년. 棗熟時: 대추가 익을 때는. 대추 익을 무렵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