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오신 날
어머님 오신 날
  • 문틈 시인
  • 승인 2021.05.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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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부유한 편은 아니었다. 가난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자식 다섯을 학교에 보낼 만큼은 사셨다. 물론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 부양과 교육은 힘든 일이었다. 이 대업 수행의 한 가운데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우리 집이라고 하는 공동체는 어찌 되었을까. 자식 다섯을 키우는 것도 벅찬 일이었지만 한편으로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업 전선에 함께 참여하였다. 그 일은 자식을 양육하는 것보다 더 힘든 고통이었다.

아버지의 양복점에서 일하는 직공 다섯 명과 가족 일곱 명의 식사를 어머니는 날마다 끼니마다 차려내야 했다. 여기에 조카 둘을 더 데리고 3년여를 학교에 보낸 적도 있었다. 놉을 얻어서 식사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혼자서 해냈다. 그 고된 식사 마련을 하루도 아니고 날마다 달마다 몇 년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어머니는 어느 해 쓰러지고 말았다. 몸도 약한 어머니에게 가족 부양과 그 대부대의 식사 마련 일은 사실상 극한의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김장때는 배추만 200포기를 담가야 할 정도로 김장전투를 치러야 했다. 김장철엔 우리 집은 김치공장이나 진배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양복일까지 돕고 있었다. 한 여자였던 어머니에게 어디서 그런 상상을 절한 놀라운 힘이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어머니의 일생은 고생, 고생의 험난한 가시밭길 여정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그렇게도 무지막지한 고생을 겪고도 어머니는 정정히 살아 계신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기적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하늘이 내려준 보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마른 삭정이 같은 가냘픈 몸을 하고 간난신고의 인생 역정을 견디고 살아남아 어머니는 구십셋의 아우라를 발하고 있다.

어머니가 성취한 위대한 인생 승리의 모습에 나는 절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댄다. 이 이야기가 어찌 내 어머니만의 이야기일 것인가.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돌보려고 이 땅에 보살처럼 오셨다. 세존은 《부모은중경》에서 제자가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어떤 사람이 흉년을 만나 부모님을 위해 자기 몸의 살을 도려내 티끌처럼 잘게 잘라 공양하기를 백천 겁(劫) 동안 계속하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는 다 갚지 못할 것”이라면서 어머니의 열 가지 은혜를 설하며 효도할 것을 당부한다.

그 열 가지를 태에 품고 보호하며, 해산할 때 고통을 겪으며, 아기 낳고 근심을 잊으며, 쓴 것 삼키고 단 것 먹여주고, 마른자리 아기 뉘고 젖은 자리에 눕고, 젖을 먹여 양육하고, 자식 먼 길 가면 걱정하고, 자식 위해 궂은 일 평생 마다하지 않고, 그러면서 끝까지 가엾이 여기고 사랑한다라고 세존은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오직 자식들을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같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싸안해온다. 어머니는 초등학교에서 가방끈을 놓았지만 구십 넘는 평생 살아오시면서 사회라고 하는 대학, 대학원 교육을 받았다고 나는 믿는다. 비바람 부는 거친 삶의 학교에서 배운 지혜의 말씀은 따로 ‘어머니 경전’을 만들어도 모자랄 것 같다.

자식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 지혜를 꺼내어 자식들이 걸어가는 삶에 등불을 들어 주신다. ‘내 것 아닌 것에 욕심내고 손대면 안된다.’, ‘형제간에 우애하고 건강하면 된다.’ ‘남을 속이면 안된다.’ 너무나 평범해서 별 말씀 아닌 것 같지만 살아오면서 그 말씀이 삶의 중심이 되어 있음을 나는 고백한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어머니의 말씀은 인생 구루의 말씀으로 받들게 되었다. 내 집안에 있는 수천 권의 책보다 어머니의 말씀 한 마디가 더 값지게 내 삶의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때때로 나는 어머니를 간절히 원한다/하얀 머리의 조용한 여인을/무엇보다도 그 사랑 속에서 내가 꽃 피었던 것이다/얼음처럼 차갑게 내 마음에 기어든 이 격한 증오를/어머니는 쉬이 녹여 주실 것 같다.(중략, 릴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들, 딸들아, 자신이 태어난 날이 바로 어머니가 오신 날이다.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받들고 잊지 말라. 이 땅의 모든 어머니에게 눈물을 흘리며 절한다. 어머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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