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부패로 망하다 (23) - 청전 폐지로 재정이 거덜나다.
조선, 부패로 망하다 (23) - 청전 폐지로 재정이 거덜나다.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21.04.26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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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1월 13일에 우의정 박규수가 청전에 대하여 아뢰었다.

조선의 궁궐
조선의 궁궐

청전이 폐지된지 1주일 후였다.

“청나라 돈을 통용한 것은 한때의 임시변통에서 나온 것이지만, 7-8년 이래로 흘러나온 것이 많은 상황에서 돈은 천해지고 물건은 귀해지는 현상이 날로 심해져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 힘들어 했습니다.

그러나 감히 폐지를 의논하지 못한 것은 국가재정이 모두 청전으로 쌓여 있어서 한번 혁파한 후에는 보충할 대책이 없고, 청전이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 단호하게 용단을 내려 내탕고(內帑庫)에 쌓인 것이 어떻게 되든 관계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혁파해 버렸습니다. 명을 들은 날에 부녀자와 노인,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우레 같은 환성을 질렀으니, 이것은 참으로 지난 역사에서는 보기 드문 성대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재정은 끝내 쓸 밑천이 없고 백성들의 재물은 유통되는 이로움을 보지 못하게 되니, 이것이 눈앞에 닥친 절실한 근심입니다.”

고종은 1867년부터 7년째 시중에서 유통된 청전을 대안이나 유예기간도 마련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폐지시켰으니, 그 혼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이어서 박규수는 청전 사용 대책을 아뢴다.

"폐지한 청전은 하나도 쓸모없는 물건입니다. 관고(官庫)에 쌓여 있는 청전으로 북경으로 들어가는 비용으로 삼으면 저들 돈은 본고장으로 돌아가 해마다 줄어들 것이오, 우리 돈은 그대로 관고(官庫)에 있게 되어 해마다 남게 될 것이니, 이것은 시험해볼 만한 일입니다. 잘 알고 있는 역원(譯員)에게 널리 문의하여 품처(稟處)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윽고 영의정 이유원이 아뢰었다.

"사신이 갈 때 여비로 주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순전히 청나라 돈으로 주면 목전의 준비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저들 땅에서 공적으로 쓰는 은가(銀價)로 1만 냥을 지급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지금 국고에 있는 청전이 300만 냥은 되니 비록 해마다 지급하더라도 어느 세월에 끝이 나겠습니까?"

국고에 있는 청전 300만 냥은 쌀 4,500만 석을 살 수 있는 돈이다. 지금으로 환산하면 19조4천억 원에 해당한다. (4,500만석*1석 144kg*kg당 3,000원). 고종의 한 마디에 국고 19조 4천억 원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어서 고종이 하교하였다.

"지금 있는 청나라 돈을 어떻게 조처해야겠는가?"

박규수 : "만약 이렇게 될까 걱정된다면 전부 녹여서 덩어리로 만들어 쌓아두었다가 수용(需用)을 기다리는 것도 안 될 것은 없습니다."

고종: "몽땅 녹여도 되겠는가?"

이유원 : 창고의 돈도 공화(公貨)인 만큼 아래에서 마음대로 청하기는 어렵습니다. 오직 어떻게 처분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어서 고종이 하교하였다.

"호조, 선혜청과 각사(各司), 각영(各營)에 우리 돈은 얼마나 되는가?“

이유원 : "호조에 800냥 있다는 것을 신이 들어서 알고 있으나, 이외의 것은 듣지 못하여 아직 모릅니다."

호조판서 김세균 : "호조에 있는 것 가운데서 상평전은 따로 둔 것이 없습니다. 각 능(陵)과 원(園)의 제관(祭官)의 노자와 어보(御寶)와 문안패(問安牌)를 다시 만드는 일에 동원된 공장(工匠)에게 지급할 것은 모두 지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것 중에서 1만 1,500냥을 빼고 남은 상평전은 800냥에 불과합니다."

조정은 한순간에 국고가 800냥밖에 안 남은 것이다.

고종 : "지금 급대(給代)해야 하는데 무슨 방법으로 급대하겠는가?"

이유원 : "돌아보건대 지금 경비가 너무나 염려스럽습니다. 호조에서는 날마다 소비되는 비용도 이어댈 길이 없으며, 각사(各司)와 각영(各營)에 대해서 말하면 날마다 떼 줄 것을 청하지만 신은 조처할 대책이 없으니 황공하기 그지없습니다."

고종 : "쓰고 있는 상평전은 얼마나 되는가?"

이유원 : "이것은 호조 당상과 선혜청 당상이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1,000만 냥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근래에 대부분 소비해 버렸습니다."

고종 : "몇 해 전에 평안도 지방에서 결두전(結頭錢 : 토지 면적당 매긴 세금)과 원납전(願納錢)을 가지고 환곡을 갚은 자가 있었다. 청전을 혁파한 지금 재정이 매우 어려우니 지방 관리에게 명을 내려서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발본 拔本)까지 올려보내도록 하라."

호조판서 김세균 : "돌아보건대 지금 호조의 경비를 꾸려나갈 수가 없는데 성상께서 이렇게까지 염려해 주시니 참으로 흠앙해 마지않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호조에서 한 해에 받아들이는 돈이 5, 6십만 냥에 지나지 않은데, 내려주어야 할 돈은 무려 40만 6,000여 냥이나 되며, 그밖에 비상 지출이 얼마인지 예측할 수 없으니 경비가 매양 궁색할까 걱정하게 됩니다.

이번에 원금까지 징수해 버리면 당장은 다행스럽겠지만 앞으로 경상비용은 참으로 염려됩니다.” (고종실록 1874년 1월 13일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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