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저녁의 별
겨울 저녁의 별
  • 문틈 시인
  • 승인 2020.12.1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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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일찍 해가 진다. 해가 지면 금방 기온이 뚝 떨어진다.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저녁이 성큼 집안에 찾아온다. 나는 날마다 저녁 여덟 시면 잠자리에 든다. 저녁밥은 네 시 반에 먹는다. 이런 시간표는 벌써 몇 년째 지켜온 나의 하루 일정표다. 아침은 여섯 시 반, 점심은 열한 시 반, 계절이 달라져도 늘 변하지 않는 시간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으레 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내게는 빼먹을 수 없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다. 거실로 나가서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잠깐 하늘을 바라보는 것. 내가 잠들 시간에 하늘에 별이 뜬다. 여름에 아직 해가 쬐끔 남아 있을 때도 그 별은 빛을 발한다.

내 눈이 먼저 찾는 것은 바로 서쪽 하늘에 불을 막 켠 개밥바라기별이다. 별과 눈을 마주치고는 나는 ‘나 자러 간다!’ 인사를 건네고는 잠자리에 들어간다. 순전히 내 생각이겠지만 별하고 나하고는 통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별과 나의 존재의 교감이다.

깜빡 저녁인사 하는 것을 잊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 거실로 나갈 때도 있다. 별은 늘 서쪽 하늘 그 자리에 있지 않다. 저녁마다 조금씩 위치가 다르다. 별 가까이 달이 떠서 별빛이 흐릴 때도 있는데 그때는 별이 달의 호위무사처럼 보인다. 어떤 때는 별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아마도 별은 다른 하늘로 가서 떠 있을 것이다.

나는 잠자리에서 방금 저녁인사를 나눈 별을 생각하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어떤 때는 여덟 시에 잠자리에 들었어도 아홉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 때가 있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먼저 잠들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아서다. 추운 하늘에서 별은 얼마나 추울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삼라만상이 무슨 일로 생겨나 서로 애틋한 관계를 맺는 것인지를 헤아려보기도 하고, 그 세상에 나라고 하는 생명체가 태어난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며 몸을 떨기도 한다.

나는 잠들기 전의 이 짧은 시간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더듬는 이 시간에 나는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정한 상태가 된다. 내가 나를 온전히 일대 일로 만나는 시간. 본래의 내 모습과 마주하며 내 하루의 여정을 눈을 감고 되돌아본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하루 동안 내가 한 일을 더듬어보며, 반성하고, 위로하고, 내일을 다짐한다. 이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에 빠진다. 어쩌면 잠이란 것은 나를 재생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사람들 말대로 잠자는 시간은 삶에서 빼는 것이 맞을까. 아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모든 것의 시작을 준비하는, 그러니까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는 출발을 마련하는 것이 잠이다. 겨울이 새로운 일 년의 준비 기간이듯. 흔히 죽는 것을 잠자는 것이라고 하는데 죽음은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쪽에 내 생각은 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밤마다 죽음을 체험하는 셈이다. 만약 잠든 채로 깨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영원한 잠, 즉, 죽음이다.

별은 내가 곤히 잠들어 있는 중에 하늘에서 빛을 비추며 외롭게 떠 있다. 거대한 하늘을 지키면서 말이다. 분명 별은 나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 내가 저녁마다 인사를 건네는 것은 둘의 관계가 작용하는 진동이다.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물리학은 모든 물질은 입자이고 파동인데 파동으로 서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나는 이 대목이 참 좋다.

내 식으로 해석하면 만물 사이에는 진동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별과 서로 떨림으로 연결되어 있다. 놀랍고 신비스럽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매일 저녁 별에게 저녁인사를 건네는 것은 이 신비스럽고 놀라운 관계에 온몸이 떨리는 듯한 존재 의식이다. 저녁 하늘에는 별, 지상에는 그 별을 바라보는 나.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인가. 별과 나 사이에 전우주적인 시그널이 교환된다. 하루를 보낸 내게 전율을 안겨주는 시간이다. 아무래도 나는 이 관계를 더 이상은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밤에 하늘에는 별빛, 땅에는 불빛이 찬란하다. 그 빛들은 그늘지고 아프고 안타까운 것들을 죄다 어둠으로 보듬어준다. 낮보다 밤이 더 신비스러운 이유다. 흔히 낮에 멀리 본다고 생각하지만 밤에는 더 멀리 본다. 은하계의 끝 저 멀리서 오는 별빛을 볼 수 있다. 나는 그 별빛들을 생각하면서 잠이 든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별을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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