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2) 오도송(悟道頌)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2) 오도송(悟道頌)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9.10.0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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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 뒤흔드니

참선의 도를 깨치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수도승들은 오도송을 소리 높이 외쳤을 것이다. 아니면 암송하면서 도의 정도를 가늠도 해보았다. 그래도 부족함을 느끼면 수도에 정진하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 속에 반야의 깊은 세계에 몰입하면서 부족한 공부와 수행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오도송의 진리를 묻는다. 기실은 자신을 합리화해버리지만 삼천세계를 뒤흔들면서 눈 속에 복사꽃만 붉게 핀다고 하면서 자신의 도를 깨닫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悟道頌(오도송) / 만해 한용운

사나이 이르는 곳 어디나 고향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 수심에 잠겼던가

한 마디 버럭 지르니 복사꽃 붉게 피네.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

남아도처시고향    기인장재객수중

一聲喝破三千界    雪裡桃花片片紅

일성갈파삼천계    설리도화편편홍


한 마디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 뒤흔드니(悟道頌)로 번안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남아가 가는 곳은 어디나 고향 같은 것을 / 그 몇 사람들이 객수(客愁) 속에 길이 갇혔나 // 한 마디 소리를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뒤흔드니 / 눈 속에 점점이 복사꽃만 붉게 지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도를 깨달은 송시]로 번역된다. 오도송(悟道頌)은 도를 깨닫는 송시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불자들은 자신이 도를 깨닫기 위해 이런 시제로 시를 상당히 썼다. 혜능스님, 서산대사을 비롯해서 얼마 전에 열반한 성철스님도 오도송을 음영하며 선도의 바른 세계에 젖어 들고자 했다.
시인도 스스로 도를 깨닫는 경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남아가 가는 곳은 어디나 고향이라고 하면서 그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객수(客愁) 속에 갇혔나하면서 의문을 던진다. 그는 조선 땅덩어리가 감옥인데 어떻게 불 땐 방에서 편히 자겠느냐면서 냉골에서 꼿꼿이 앉았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것이 좌사법(座思法)이다. 그렇지만 조선 땅덩어리에 갇힌 것이 아니라, 우주라는 안방에 앉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화자는 한 호소를 보낸다. 한 마디 소리를 버럭 질러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뒤흔들어 놓았더니 마치 눈 속에서 복사꽃이 편편히 붉게 핀다고 했다. ‘삼천세계’는 소천, 중천, 대천의 세 종류 천세계가 이루어진 세계를 말한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해서 해와 달과 사대주(四大洲) 그리고 범천(梵天)을 합친 세계라고 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가는 곳이 고향 같네 객수 속에 길이 갇혀, 소리 한 마디 뒤흔드니 복사꽃 붉게 피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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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1권 5부 外 참조]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으로 승려시인, 독립운동가이다. 1882년 4세 때 임오군란이 일어났으며, 6세 때부터 향리 서당에서 10년 동안 한학을 부지런히 익혔다. 14세에 고향에서 성혼의 예식을 올렸다. 1894년 16세 되던 해 동학란과 갑오경장이 일어났다.

【한자와 어구】
男兒: 남아. 到處: 이르는 곳. 是故鄕: 고향이다. 幾人: 몇 사람. 長在: 오래 갇히다. 客愁中: 객의 수심 속에 // 一聲: 한 마디. 한 소리. 喝破: 버럭 지르다. 三千界: 삼천세계. 소천, 중천, 대천의 세 종류의 천상 세계를 말한다. 雪裡: 눈 속에. 桃花: 복사꽃. 片片: 송이송이. 紅: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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