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2회 정약용의 ‘애절양 (哀絶陽)’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 2회 정약용의 ‘애절양 (哀絶陽)’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승인 2019.09.02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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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동문 밖 노파 주막집 (나중에 정약용은 자기가 기거한 방을 '사의재'라 이름 지었다.)

1800년 6월에 개혁군주 정조가 갑자기 붕어하자 정약용(1762∽1836)은 1801년 11월 하순에 강진으로 유배 왔다. 그런데 그에게 거처를 제공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고맙게도 읍내 동문 밖 주막집 노파가 그에게 토담집 방 한 칸을 내주었다.
1803년(순조3) 가을에 정약용은 한 농민의 슬픈 사연을 듣고 ‘애절양 (哀絶陽)’ 시를 지었다. ‘남자의 거시기가 잘림을 슬퍼하는 시’의 사연은 갈대밭 마을에 사는 한 백성이 낳은 남자아이가 사흘 밖에 안 되었는데 군적(軍籍)에 들어가고 아전이 못 바친 군포(軍布)대신 소를 빼앗아갔다.
화가 난 백성은 칼을 뽑아 양경(陽莖: 성기)을 스스로 자르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런 곤욕을 당한다.” 라고 하였다. 그 아내가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진 양경을 가지고 관청에 가서 울며 호소했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다음은 '애절양(哀絶陽)' 시이다.

갈밭 마을 젊은 아낙네 곡소리 길기도 해
蘆田少婦哭聲長
곡소리 동헌을 향해 하늘에 울부짖네. 
哭向縣門呼穹蒼
싸우러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있었으나
夫征不復尙可有
옛날부터 남자의 양기를 잘랐다는 말은 못 들었네.
自古未聞男絶陽

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舅喪已縞兒未澡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조·부·자 3대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네.
三代名簽在軍保
하소연 하러 가니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관청에 지켜 섰고,      
薄言往愬虎守閽
이정(里正)은 호통 치며 소마저 끌고 갔네.
里正咆哮牛去皁

칼 갈아 들어간 방에 흘린 피 자리에 흥건하고
磨刀入房血滿席
남편은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自恨生兒遭窘厄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던 형벌도 억울한데
蠶室淫刑豈有罪
민(閩)의 거세 풍습은 참으로 비통했네. 1)
閩囝去勢良亦慽

자식 낳고 살아가는 이치, 하늘이 주시는 일
生生之理天所予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되지.
乾道成男坤道女
말이나 돼지 거세도 가엾다 말하거늘   
騸馬豶豕猶云悲
하물며 우리 백성 자손 잇는 길임에랴.  
況乃生民思繼序

부자들은 일 년 내내 풍악 울려 즐기지만
豪家終歲奏管絃
쌀 한 톨 삼베 한 치도 내놓는 일 없네. 
粒米寸帛無所捐
너나 나나 똑같은 백성인데 어찌하여 후하고 박한가?
均吾赤子何厚薄
객창(客窓)에서 거듭거듭 시구편(鳲鳩篇)만 외우네. 2)
客窓重誦鳲鳩篇

이 얼마나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는 시인가. 민중의 아픔을 읊은 사회시 (社會詩)이다.
애절양 시는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 폐해의 극치이다. 황구첨정은 젖먹이 어린애까지 군적(軍籍)에 올려 군포(軍布)를 징수하던 횡포이고, 백골징포는 죽은 사람도 군적(軍籍)에 올린 횡포였다.
16세에서 60세까지 남자 장정에게 부과된 군정의 경우도 양반은 면제되었다. 이런 불평등속에서 백골징포와 황구첨정이 비일비재했으니 백성들은 살 길이 없어 도망치고, 유민(流民)으로 전락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병전(兵典) 6조’제1조 첨정(簽丁 : 장정을 병적에 올리는 일)에서 군정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첨정하여 군포를 거두는 법은 양전(중종 때 인물)에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폐단이 크고 넓어서 백성들의 뼈에 사무치는 병폐가 되었다. 이 법을 고치지 아니하면 백성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약용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순조 임금 시대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수령과 아전의 가렴주구는 극에 달해 삼정(三政)이 더욱 문란해졌다. 부패가 풍습인 시대였다.


1) 옛날 중국 민(閩) 지방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환관을 시키려고 거세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인간으로서는 차마 못 할 일인데 하물며 자기의 양경을 잘라서 군정(軍政)의 폐단에 대해 항의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2) '시구편((鳲鳩篇)’은 『시경(詩經)』‘조풍(曺風)’에 나오는 시인데, 조나라 사람이 그들을 지배하는 권력자를 뻐꾸기에 빗대어, 뽕나무에 앉은 뻐꾸기가 새끼 일곱 마리에게 골고루 먹이를 먹여 기르는 것을 칭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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