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덕흥 ‘당산나무전시회’
꽃보다 덕흥 ‘당산나무전시회’
  • 정인서 광주 서구문화원장
  • 승인 2018.10.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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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마을 주민들이 당산나무 아래에서 가진 첫 그림 전시회
덕흥마을 주민들이 당산나무 아래에서 가진 첫 그림 전시회

 

광주시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 주민들이 처음으로 그림전시회를 가졌다. 비록 몇 시간의 짧은 야외전시이지만 마을의 상징적인 공간인 당산나무 주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색다른 마을축제가 되었다.

19일 오후에 가진 이번 전시회는 12명의 60~70대 ‘마을작가’들이 그린 작품들이 선보였다. ‘마을작가’인 이들은 과거에 그림을 접해보지 않았던 주민들이다.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여 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마을회관에 모였다. 청년작가들의 자원봉사로 그림의 기초부터 배우고 물감을 칠하는 등 제법 구도와 색감을 느끼는 기회를 가졌다.

마을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농사일로 바쁘지만 매주 미술수업에 참여했고 그림을 그리며 청년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덕분에 그림에 대해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광주시립미술관도 가보고 담양 담빛예술창고도 가보았다. 생전 처음 미술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찾은 나들이였다. 그런 가운데 야외에서 사생도 해보고 마을 풍경도 그리고 자화상도 그려보는 등 마을작가들의 솜씨가 제법 나아졌다.

이제 마을작가들은 자신이 생겼다. 처음 미술수업에 참여했을 때는 막연하게 어렵다고만 생각했지만 열심히 그려 완성된 그림을 보면 기분이 무척 좋았고 뿌듯했다고 한다.

내년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 벽화를 그려 마을의 이미지도 바꾸고 추억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벽화를 통해 마을의 과거와 역사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어르신들의 마음가짐이 좋아보였다.

자원봉사로 나섰던 3명의 청년작가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즐거웠고 어르신들이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감사하는 시간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번 전시회는 서구문화원에서 기획한 어르신문화프로그램의 하나이다. 실.뜨.기.(실버와 뜨거운 청년의 기억)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되었지만 어르신과 청년의 문화향유 및 세대교류라는 새로운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그림전시회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덕흥마을 주민들, 고령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신 어른들도 있다.
그림전시회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덕흥마을 주민들, 고령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신 어른들도 있다.

 

이 자리에 참석한 1백여명의 주민들은 작품전시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며 마을회관에 전시하고 두고두고 보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날 당산나무전시회에 오지 않은 주민들이나 이곳을 찾은 외지 가족들에게 마을을 자랑해야겠다는 것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은 문화예술의 영역은 전문가라 칭하는 ‘작가’들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전에 광주비엔날레에서 ‘나도 작가’,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나도 디자이너’라는 이벤트성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연속성이 부족했다.

문화도시 광주를 내세우려면 큰 목표를 가져야 한다. 광주의 모든 시민들이 한 가지 이상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큰 기획이 필요하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부터 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일반 교육프로그램 외에 다양한 문화예술 영역을 직접 경험하거나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인 과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교육이 전문가 수준까지 진행하라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는 미술이나 공예를 배웠다면 중학교 때는 농악이나 사진을 배우고 고등학교 때는 디자인이나 연극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마다 학년 별로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다.

마을 어르신들의 경험 사례에서 보듯이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을 통해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자신감도 갖게 만들고 문화향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초중등학교 시절에 제대로 된 판소리를 한 번도 듣지 않은 사람이 나이 들어 국악당을 찾아볼 수 있을까. 심청가나 흥보가 등을 동화로만 읽어보고는 판소리 한 마당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모리, 잦은모리, 휘모리를 교과서로만 배우고는 그 장단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필자도 어려서 판소리를 한 번도 직접 듣지 못해 지금껏 가까이 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다만 초등학교 시절에 그림이나 붓글씨를 한 번쯤 해본 경험이 있어서 최근에 시간만 있으면 붓잡기를 하고 있다. 더 욕심을 부려볼까도 하는 데 그 기회만 엿보고 있다. 언젠가 여러분 앞에 붓잡기의 성과를 보여줄 요량이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첫걸음이다. 초중고등학교가 문화도시 광주를 살찌우는 첨병이다. 광주가 아무리 브랜드공연을 만들어도 보려오는 사람을 기르지 않으면 누가 객석에 앉아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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