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세계 펼쳐지는 별천지에서
은빛 세계 펼쳐지는 별천지에서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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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띄우는 편지 - 진해 웅산>


벚꽃만큼 화사한 꽃도 없습니다. 벚꽃은 조그마한 벌집에 수천 마리의 벌이 붙어 있듯이 나무 하나에 수만 송이의 꽃송이가 군집하여 집단의 아름다움을 과시합니다. 특히 은빛으로 반짝이는 벚꽃터널을 걸을 때면 그 정취를 실감나게 맛볼 수 있습니다. 하얀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는 날, 좋아하는 사람과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벚꽃길을 걷노라면 축복을 받은 듯한 감회에 젖게 됩니다.

마산에서 창원으로 진입하는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벚꽃 길은 시작됩니다. 진해로 통하는 이 도로의 벚꽃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유혹하여 장복터널로 인계합니다.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도 화려한 꽃 앞에 감동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창원시와 진해시를 연결하고 있는 장복터널을 통과하자마자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가로수뿐만이 아니라 산비탈까지 가세하여 온통 은빛세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천지에 온 것 같습니다.

환경은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꽃이 없고, 흐르는 물이 없고 울창한 숲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삭막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는 오죽하겠습니까?
휘날리는 벚꽃터널 너머로 쪽빛 바다가

아름다운 벚꽃을 바라보는 마음이 예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뒤편의 푸른 편백나무와 대비를 이루고 있는 벚꽃세상은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은빛 아름다움으로 채워줍니다. 시내로 들어섰다가 안민고개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로 접어듭니다. 다시 벚꽃터널을 만납니다. 마치 산허리에 하얀 띠를 둘러놓은 것 같은 벚꽃 길을 바라보는 기분이 아름다움을 넘어 황홀합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로는 진해시내가 내려 보이고, 진해 앞 바다가 푸릅니다. 진해 앞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무인도에도 벚꽃이 피어 인상적입니다.

안민고개까지의 벚꽃 길을 따라 산보하는 진해시민들이 행복해 보입니다. 길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구불구불해야 운치가 있습니다. 벚꽃 길도 직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보다는 이렇게 수많은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 길이 매력 있습니다. 여기에 푸른 바다가 배경이 되는 수채화는 한 폭의 빼어난 작품이 됩니다.

벚꽃에 취해있다 보니 어느덧 안민고개에 도착해 있습니다. 안민고개는 진해와 창원을 넘나드는 고개로 서쪽에는 장복산(582m)이, 동쪽에는 웅산(703m)과 불모산(802m)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장복산 비탈에는 진달래가 붉게 피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제공해줍니다.

능선 곳곳에는 진달래가 막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붉은 진달래의 은은함과 시내 쪽에 피어 있는 벚꽃의 화려함이 대조를 이룹니다. 능선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수종(樹種)이 다릅니다. 진해쪽(남쪽)으로는 조림한 편백나무가 진록색을 띠고 있고, 창원쪽(북쪽)으로는 활엽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해와 창원은 도시의 성격도 다릅니다. 진해가 해군기지가 있는 군사도시이면서 항구도시인 반면 내륙에 있는 창원은 신흥 공업도시입니다.

진해시내 너머로 바라보이는 진해만과 크고 작은 섬들을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은 꽃을 보는 것만큼이나 상쾌합니다. 부드러운 능선은 가끔 암릉이 나타나 변화를 꾀합니다. 바위 사이에는 진달래가 피어 운치를 더합니다. 나뭇가지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연두색 잎새들이 신비롭고 어여쁩니다. 살짝 덮인 안개 너머로 바다와 섬이 보일 듯 말 듯 할 때는 그리움이 넘쳐흐릅니다. 동경의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요?

능선근처에서 반가운 야생화를 만납니다. 봄철에 나무 밑에서 보라색으로 피는 얼레지꽃을 발견한 것입니다. 수줍은 듯 가냘프게 피어 있는 얼레지꽃에서는 때묻지 않은 고고함이 풍겨 나옵니다.

북쪽으로 지척에 불모산이 자리잡고 있고, 동쪽으로 향하던 방향은 남쪽으로 꺾어집니다. 진해가 겨울에도 따뜻한 해양도시로서 인기가 있는 것은 북쪽에서 시내를 병풍처럼 막아주는 장복산과 웅산이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서는 산이 북서풍을 막아주고 앞으로는 시원한 바다가 펼쳐지는 진해는 풍수에서 말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입니다.

이곳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산세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암릉이 이어지고 뒤돌아보면 수십 미터에 이르는 벼랑들이 아찔하기도 합니다. 정상 근처의 바위 봉우리들은 전형적인 바위산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정상 근처에서 바라본 시루봉(653m)의 시루바위가 처녀의 젖가슴과 젖꼭지 마냥 예쁘게 솟아 있습니다.
진해시내 감싸주는 전통 있는 명산

웅산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시루바위를 향한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어느덧 산세는 포근해지고 우뚝 선 시루바위가 눈앞에 서 있습니다. 높이 10m, 둘레 50m에 이르는 시루바위는 멀리서 볼 때는 귀여운 모습이었는데 가깝게 보니 웅장합니다.

진해만을 바라보고 있는 시루봉은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일본 대마도까지도 보인다고 하니 남해바다를 바라보는 전망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또한 웅산은 신라시대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던 여러 명산 중의 하나이고, 조선말 명성황후가 세자(순종)를 낳고 세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백일산제를 올린 산이기도 합니다.

시루바위에서 보는 진해시내와 산자락에 활짝 피어있는 벚꽃을 바라봅니다. 진해시내에서 장복산 산비탈을 따라 안민고개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벚꽃의 행렬은 봄철 시루봉에서 볼 수 있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시루바위를 남쪽에서 쳐다보니 고개를 쳐들고 있는 곰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곰메바위라 부르기도 합니다. 곰산이나 웅산(熊山)이라는 이름도 여기에 연유한 것입니다.

바람재를 지나 천자봉으로 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재에서 자은본동으로 하산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고속도로 같은 길은 조용한 오솔길로 바뀝니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가 산자락과 진해시내의 하얀 벚꽃과 조화를 이룹니다. 진달래가 은은하고 지조 있는 꽃이라면 벚꽃은 화려하고 깔끔한 꽃입니다. 바람에 실려오는 꽃향기가 온 몸을 감싸줍니다. 산 아래로 펼쳐지는 벚꽃의 화려함은 갈길 바쁜 나그네의 눈길을 자꾸만 붙잡습니다. 갓 피어난 연두색 신록이 아니었다면 나의 황홀한 가슴은 쉽게 달래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천자봉(465m)에서는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바다가 가깝습니다. 화창하지 못한 날씨 때문에 눈앞에 펼쳐져야 할 거제도나 가덕도 같은 섬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발령 쉼터가 내려 보이고 대동조선소가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역시 곳곳을 하얗게 물들인 벚꽃 물결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바다도 춤을 추고 사람의 마음까지도 춤을 춥니다. 진해를 빠져 나오는데 벚꽃잎이 바람에 날리면서 배웅을 해줍니다.

*산행코스
-. 제1코스 : 안민고개(2시간) → 불모산 갈림길(20분) → 정상(30분) → 시루봉(10분) → 바람재(50분) → 천자봉(50분) → 대발령 (총 소요시간 : 4시간 40분)
*바람재에서 자은본동으로 하산시 20분 소요(이 경우 총 소요시간 3시간 20분)

-. 제2코스(장복산 연계코스) : 장복산 공원(1시간 20분) → 장복산(1시간 40분) → 안민고개(2시간) → 불모산 갈림길(20분) → 정상(30분) → 시루봉(10분) → 바람재(50분) → 천자봉(50분) → 대발령 (총 소요시간 : 7시간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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