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록만 있고 사람은 없다
도록만 있고 사람은 없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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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가 시작함과 동시에 얼굴을 감출 수 밖에 없었던 이가 있다.
"도록(圖錄) 제작작업이 순조롭게 진행중입니다. 모두,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프레오픈 이전에 문제없이 발간될 것 같습니다. 많은 때는 20여 명, 적을 때는 10여 명이 날밤 새며 작업한 결과입니다. 스태프들에게 힘 주시구요. 도록 많이 배포되도록 관심 가져주시길... 저는 오늘밤 인쇄소로 이동합니다. 그럼."

도록작업 윤정현씨 작업 후 쓰러져 입원중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의 직원인 윤정현씨는 3월 22일 도록 작업을 마치고 다음날 새벽, 낯선 도시 서울에서 쓰러졌다. 오랜 기간 밤샘 작업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자 찜질방에 들렀다가 깨어나지 못한 것. 오랫동안 의식을 찾지 못한 윤씨는 담당 의사까지 이후 상태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중환자가 돼버렸다.

그동안 윤씨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은 그의 고생을 알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력 감축이다 뭐다 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숱한 날을 새며 도록을 만들었는데 도록만 오고 사람은 오지 않았으니"라며 한숨 짓는 벗들 가슴엔 답답함이 베어 있다.

이들의 말처럼 비엔날레 개막 이틀 전인 27일 예정대로 착오없이 잘 인쇄된 도록은 사무실로 배달, 기자들에게 배부됐다. 하지만 누구 하나 윤씨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기간의 숨가팠던 시간들을 보기 좋은 색상의 표지로 포장한 도록만이 그 자리를 빛내고 있었을 뿐.

다행히 윤씨는 최근 의식이 돌아와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옮겨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언론에선 이들의 노고보다 준비 부족으로 인한 허점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비엔날레가 끝나기 전에 윤씨는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다시 비엔날레에 발을 딛는 순간 그 느낌은 어떨런지. 거대한 예술 작품 안에서도 사람이 숨쉴 수 있는 축제가 되길 많은 이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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