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이 시끄럽다구요?
락이 시끄럽다구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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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공연장 곡스 운영하는 이준희씨

이준희씨(42)는 오후 8시까지 아내가 운영하는 만두집 일을 거들면서 두 아들을 키우는 평범한 가장이다. 음악 앞에선 '철없는 남편'이 돼버린다. 아내에게 천만원을 빌려서 음악 공간을 만들고 한달에 50만원씩 갚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아직까지 돈을 쥐어준 적이 없는 이씨.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음반을 내놓은 적도 없다. 어딜 가도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싸인해 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없다. 오히려 음악 때문에 아내가 벌어놓은 돈을 모두 잃었고 심지어 아내와 한달간 이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음악에서 손을 뗄 수가 없다.

"아닙니다 가장 솔직한 느낌 표현법입니다"

이씨가 음악과 만나게 된 것은 '풋풋한 가슴앓이' 때문이었다. "어릴 적 5년간 짝사랑하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 기타를 치기 시작했어요" 이씨는 음악을 '일기'라고 표현한다.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100% 끄집어 낼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나만의 소리로…"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클럽 활동도 하고, 부푼 꿈을 갖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모험을 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평범한 직장 생활을 했다. 하지만 항상 이씨는 마음속으로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니"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음악"

자유로운 음악활동은 일기 쓰는 것과 같은 것
음악이 살아 숨쉬는 공간 '곡스' 4년째 운영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곡스' 문을 열었단다. "곡의 복수형이죠. 한 장르의 음악이 아닌 모든 음악을 포용한다는 뜻이예요". 이씨의 말처럼 곡스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어요. 음악을 통해 바다나 산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어린 시절로도 되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곳은 누구나 신청만 하면 공연을 할 수 있다.

만두 배달을 하러 오토바이를 탄 순간에도 그는 악상이 떠오르면 작업실로 핸들을 돌린다. 그리고 음악 프로그램에 머릿 속의 악보를 옮겨 놓고 나면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면서 등에 땀이 쫙 흐른단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음악에 쏟아놓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이 2백여개가 넘는다.

그가 음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 음악은 '기형적'이예요" 42년동안 마음 속에 한이 된 그의 푸념과도 같은 말투다. 곡스는 음악 중에서도 특히 락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찾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외국 문화에 길들여진 매스컴에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락 클럽 후배들 활동 무대 만들고파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지켜봐 주길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에 꾸준히 노력하면 길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길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성공한 가수라면 대부분이 매스컴에 의해 선택되는 현상을 보면서 이씨는 마음이 아프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나요? 어느 한 쪽이 부족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켜봐 주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을텐데"
곡스를 취재하러 왔던 몇몇 기자들조차 "음악이 너무 시끄럽다"며 "조만간 곡스도 사라질 것이다"고 단언했다는 것. 이씨는 이들에게 심심찮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이라도 그 길을 만들어 주고 싶단다. 전국의 작은 클럽들을 묶어내고 그 안에서 후배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선'을 만드는 것이 그의 바램이다. 그러나 '기형적'인 음악 환경 때문에 뜨거운 열정을 갖고 시작한 팀들이 한 두 번 공연하다고 해체되기 일쑤라 그 작업은 쉽지 않다. 심지어 전국 클럽 연합에서 오디션까지 거쳐 음반을 제작했던 팀도 음반이 나오기도 전 사라지는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에 곡스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음악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꿈'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는 5일 광주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아름다운 대결(?)이 펼쳐진다. 발라드의 황제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신승훈과 소수지만 꾸준히 우리정서를 담아가고 있는 락그룹 델리스파이스 콘서트가 대극장과 소극장 무대에 올려진다.

이씨는 "델리스파이스 공연 예매가 120장이나 됐다"며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어 있다. 외형적인 규모로는 신승훈 콘서트가 성황을 이룰지언정 뜨거운 열기만큼은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들은 그냥 구경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락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쳐주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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