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오늘]소외된 노동자의 희망 찾기
[투데이오늘]소외된 노동자의 희망 찾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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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민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장
시민과 노동자 모두가 건설일용노동자를 '노가다'가 아닌 '건설노동자'로 대접하며 그분들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과제로 만들어 가야할 때가 왔다

얼마전 광주건설노동조합을 방문한 건설일용노동자 한 분과 대화를 하면서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건설일용노동자의 처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보편적이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많은 제도와 관행이 아직도 남의 나라의 일로만 여기며 살아가는 노동자가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향후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일용노동자의 노동3권 확보 및 사회적 복지제도 수립에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 다짐하며 그 분과의 대화 내용을 독자들과 함께 하고자 한다.

그 분은 건설일용노동자에게는 지속적인 일자리 보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말했다.

"우리 건설일용직에게 임금인상보다 더 시급한 것은 지속적으로 꾸준하게 일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당 10만원 받고 10일 일하는 것보다 8만원 받고 15일 일하는 게 더 낫다는 거죠."

"노동자에게는 지속적인 일자리 보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분은 건설경력 15년의 비계공이다. 그동안 항상 고용불안을 느끼며 살아왔다고 한다. 언제 일을 할지, 누구에게 연락이 올지 몰라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는 집밖을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날마다 일을 구해야 하는 데서 비롯된 고용불안은 곧 생활불안과 인생불안으로 이어진다.

"최소한 한달 계획은 딱 떨어질 수 있어야 생활이 되거든요. 일요일이라도 일이 있으면 무조건 나가야 되니까요. 그렇다고 노후가 보장돼 있나, 아무 비전이 없습니다."

고용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조건에서 건설일용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새벽에 캄캄할 때 나와서 결국 일을 못 구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왜 이렇게들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겨울에는 더 심각하죠. 일용근로자도 자신을 대변하는 단체가 있어서 떳떳한 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지도 오래됐습니다. 대다수 일용근로자들이 같은 생각일 겁니다."

그분은 87년에 화순에서 올라와 친구의 소개로 일당 9천원짜리 목수 조공(데모도)으로 출발했다. 그 뒤 주로 철근·콘크리트·비계 쪽 일을 하다가 지금은 비계 기능공으로 자리 잡았다. 항상 '내년이면 그만 둬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

지난 세월 후회는 없지만 가슴에 남은 것은 많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떳떳하게 자랑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건설일용직은 사회의 최하층 밑바닥 인생으로 치부되는 게 사실입니다. 기능공이건 반장이건 현장에서야 나름대로 대접을 받지만 바깥에서는 어차피 노가다로 취급합니다. "

이러한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때가 IMF 직후였던 지난 98년. 하도 어려워서 은행 대출을 신청했지만 근로자도 사업자도 아닌 신분 때문에 결국 퇴짜를 맞았다. "그래도 한 집안의 가장으로 제 나름의 전문기술을 갖고 열심히 일해 왔다고 자부했는데, 정말 이 사회에서는 존재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애가 밀려오더군요."

또 일용직노동자 처우개선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생각하는 게 바로 일용근로자도 떳떳하게 자신의 신분과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일용직노동자 처우개선의 근본문제는
자신의 신분과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제도적 장치 필요


"일용근로자 등록기관에서 신분증 같은 걸 만들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공사현장을 옮길 때도 신분증 한 장만 내밀면 그 사람의 직종과 단가, 경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노임 착취 같은 것도 사라질 테고 장기적으로 보면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 의료보험 적용과 같이 일용근로자들이 사회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토대가 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일용노동자들의 '뜨내기 근성'을 막는 데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것과 이러한 신분 인증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일용노동자 자신들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지금 건설현장의 노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현재 평균연령이 46세 전후인데 만약 10년이 지나면 53세 정도 될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이미 건설현장에서 30대의 기능인력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고 하면서 "일용근로자들을 위한 훈련 시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지금 건설현장에는 마흔이 안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외국인 노동자가 들어오게 될 겁니다. 체계화된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옛날에는 '노가다' 하면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막노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고등학교는 졸업한 사람들이 대다수거든요. 핵심기술을 가르쳐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유용한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수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라고 대안도 제시했다.

지속적인 일자리 연결과 노동자신분 인정,
참신하고 현장성 있는 인재교육 실시
'노가다'아닌 '건설노동자'로 인정하는 사회를


이러한 인재 훈련만이 일용근로자도 살고 건설업계도 사는 길이라고 그분은 믿고 있다. 지속적인 일자리 연결과 노동자신분 인정, 참신하고 현장성 있는 인재교육 실시. 그분이 건설현장에서 청춘을 바치며 얻어낸 이 세 가지 과제는 그대로 우리 건설산업과 일용노동자의 현실 과제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특히 근로자 신분인정 문제야말로 핵심적인 고리라고 그분은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용근로자들도 사회의 일원으로 정당한 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일용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고통을 생각한다면 아주 작은 것이죠."

그분과의 짦은 대화 속에서 건설일용노동자의 절망을 보았고, 희망을 보았다. 사회적 소외에서 오는 삶에 대한 불안과 생계의 막막함에서 오는 절망을 보았으며,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신의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제 우리 시민과 노동자 모두가 건설일용노동자를 '노가다'가 아닌 '건설노동자'로 대접하며 그분들의 문제를 우리 모두의 과제로 만들어 가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윤영민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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