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말바우- 질긴 생명력 '시장은 살아있다'
15.말바우- 질긴 생명력 '시장은 살아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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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대목을 맞아 재래시장들이 모처럼 재미 좀 본 것 같다. 말바우시장도 예외가 아니어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북쩍거렸다.

그러나 말바우시장은 평소에도 다른 재래시장과 다른 활기를 느낄수 있다. 상설시장도 아니고 인가를 받은 시장이 아닌데도 말바우시장이 생기가 도는 이유는 뭘까. 재래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구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양동서 밀려난 손수레 노점상 들
20여년 생존투쟁으로 뿌리내려
담양 순창 화순 새벽이슬 맞은 농산물
"깍아줘" "남는 것 없어~"흥정 활기
비인가 불구 '도심속 장터' 자리매김

말바우시장은 매일 장이 서지 않는다. 2일과 7일에는 큰장이 서고 4일과 9일에는 작은 장이 선다. 그래서인지 말바우시장은 마치 시골장터같다.

말바우시장의 경쟁력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즉 없는 것 없이 무엇이든 살 수 있는데다 후한 인심이 있는 시골장터같은 분위기가 그것이다.

실제로 말바우시장은 호남최대시장인 양동시장에도 없는 것이 있는 소량다품종을 자랑한다. 거기다 말만 잘하면 덤이 더 많을 정도로 흥정의 맛도 있다.

특히 농산물의 경우 말바우시장에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공판장을 거치지 않고 담양, 순창, 화순 등지에서 농민들이 새벽이슬을 털고 직접 생산해 이고 지고 온 것들이기 때문에 싱싱하다.

말바우시장은 또 질긴 생명력이 있다. 아직까지도 관청의 인가를 받지 못한 재래시장이지만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 그것이다.

말바우시장은 광주의 기존 시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바로 노점상과 손수레 상인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일제때부터 호남제일의 시장이었던 양동시장은 해방직후 지금처럼 상설시장이 아닌 큰 장날과 작은 장날로 다시 출발했다.<본지 7월13일자> 그러다 60년대 중반 지금의 상설시장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당시 양동시장 상인들중에 재력이 있는 이들은 점포에 입주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일부 상인들은 노점상이나 손수레 상인으로 전락, 기존 점포상인들의 눈밖에 난다.

결국 이들은 양동시장에서 쫓겨나다시피 대인시장 입구쪽으로 차츰 밀려오다가 다시 서방시장 입구까지 밀려와 지금의 동신고 정문 밑에 일시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서방시장 상인들도 이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은 '생존의 법칙'인지 모른다. 설상가상으로 인근 동부시장과 두암시장 등에서도 노점상과 손수레 상인들을 놔둘 수 없다며 구청과 경찰에 끊임없이 단속을 요구, 이들의 설땅이 점점 없어지기에 이른다.

말바우시장은 이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지금의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바로 70년대말 지금의 말바우시장 자리에 시유지로 어린이대공원 부지의 공터가 있었는데 서방시장 등에서 쫓겨난 상인들이 이곳으로 밀려들어 시장을 연 것이다. 그러던 것이 80년 5·18직후 광주시가 이 시유지를 매각처분하면서 본격적인 시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말바우시장의 생명력은 시유지 매각이후 진짜로 발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시유지 매각입찰에 당시 시장상인들도 참여했으나 엉뚱하게도 개인 건축업자들에게 넘어가자 상인들이 조직적으로 대응해 건축업자들을 설득, 시장점포를 만들게 하고 일부는 이들로부터 점포를 임대받으면서 오늘날같은 시장을 만든 것.

상인들은 또 행정당국과 사법당국과의 20여년에 걸친 '투쟁'을 통해 현재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말바우시장은 관청으로부터 인가가 나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에 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구청으로부터 위탁받은 청소업체가 쓰레기를 수거해 가지 않았다. 결국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관리비를 거출, 청소를 하는 등 질서유지에 나섰는데 이것이 시도때도 없이 시비거리가 된 것이다.

바로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상우회에서 상인들에게 관리비 명목으로 매월 2천원에서 1만원의 회비를 걷은 것이 구청에서는 불법징수라는 이유로, 사법당국에서는 횡령 등의 혐의로 상우회장 등을 수차례 입건 조사한 것.

그러나 문제가 된 관리비가 청소 등을 위한 최소한의 경비를 협약서에 서명한 상인들로부터 걷어 투명하게 집행해 온 것으로 드러나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말바우시장은 상인들보다 소비자들이 지켜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상우회장 등이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을 때 시장에 인접한 주택가 세대주들이 시장유치 동의서에 거의 대부분 서명을 했는가하면 전통있는 재래시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애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북구청 관계자는 "말바우시장은 비인가시장이기 때문에 시장관리행정이나 재래시장 활성화 계획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인가시장이 되려면 상업지구가 아니어서 도시계획상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와관계없이 이미 전통있는 재래시장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진 기사- 말바우시장 '산증인' 조재봉 상우회장

"영세상인들 생존위해
몸부림치며 지켜온 시장
말바우는 죽지 않을 것"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돼 관청의 인가도 받지 않은 말바우시장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상인들의 자율적인 관리 때문에 가능했다. 이 자율적인 관리체제를 만들고 이끌어온 사람이 현재 상우회장인 조재봉씨(61)다.

조 회장은 25세때부터 노점상을 시작, 양동시장에서 대인시장, 서방시장을 거쳐 말바우시장에 자리잡을때까지 평생을 시장에서 살아왔다. 특히 조 회장은 80년 말바우시장이 현재의 자리에 본격적으로 터를 잡은 이후 상우회를 조직하며 수도 없이 행정당국과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으면서도 말바우시장을 지켜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조 회장은 거의 매년 연례행사처럼 조사를 받으면서 오히려 말바우시장이 성장했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지난 90년 6월25일 상우회를 정식 출범시킨 것도 사실은 경찰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경찰이 조 회장을 입건해 횡령 등의 혐의로 조사했으나 아무런 혐의를 찾지 못하고 풀어주면서 "당신 혼자 당하지 말고 조직을 만들어라"고 했다는 것.

조 회장은 "조사를 받을때마다 선진국에도 노점상이 있는데 노점상이 죄가 되느냐고 큰소리치며 버텨왔다"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인가 시장이라는 이유 등으로 인근 시장에서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에 구청이나 경찰 등에서 어쩔수 없이 조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시장을 지켜온 상인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재래시장이 아무리 힘들어도 말바우시장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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