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덕치면 진메에서 천담까지, 거기 사람의 길이 있었다
임실군 덕치면 진메에서 천담까지, 거기 사람의 길이 있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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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짐승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직립보행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직립보행의 즐거움조차도 요즘에 와선 어쩌면 괴로운 일이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시꺼먼 토사물을 내놓는 차의 분뇨통과 인간의 호흡기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이다.

자전거를 타고 갈 때면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다. 차가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한 배설물에 코와 입을 쳐박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마저 들며, 차들에게 인간의 길을 정말 빼앗겨버렸다는 생각마저 들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어느 산길을 가던 시골길을 가던 나의 안광은 번쩍거릴 수밖에 없다. 어디엔가 있을 인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황톳가루 날리는 길을 찾느라고 말이다.

며칠 전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와 유사한 길을 찾았다.
그 길은 사실 걸어본 사람보다 한번쯤은 보았거나 혹은 들어본 사람들이 더 많은 길이다. 김용택이란 시인이 늘 발딛는 곳에서 느낀 감정을 옮겨다가 세상에 퍼 주었기 때문에 익히 보아온 길이며, 지금은 스님이 된 가수 정세현이 물결같은 운율로 꽃등을 밝혀 주며 그 길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전라북도 순창군 덕치면 진메마을 앞을 통과하여 지금은 학생 없는 운동장만 남은 천담분교 앞까지 이어진 길이다.

김용택 시인, 스님 정세현이 오간,
인간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황토가루 날리는 길이 거기에…


섬진강의 물길이 생명을 처음 잃고 마는 옥정호를 운좋게 통과한 녀석과 그 남쪽의 물우리의 물과 북쪽 갈담의 물이 서로 합하여 진메마을을 통과하여 가는 물가에 있는 길이다. 산이 넘지 못하는 또 다른 산 사이에 물은 길을 트고 지나며, 사람은 그 물을 따라 삶의 길을 만들었던 것임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그 길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은 길이다.

지금 그 길섶에는 이름모를 꽃 정도로 넘겨버릴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어 저마다 돈 2만원 투자하여 식물도감을 사고픈 마음이 일게하는 꽃잔치가 벌어졌고, 목이 탈 때쯤 옹달샘이 스스로 눈에 들어오며, 흙먼지 뿜고 차가 지나가더라도 그 푸른 물 한번 보면 목이 스스로 자정을 해버리는 그런 길의 서정이 펼쳐져 있다. 그렇다고 그 길이 비단길이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사람의 길에 차들이 다니면서 길이 조금씩 내려앉은 바람에 산을 쪼개서 퍼다놓은 돌들이 약간은 흉물스럽게 생채기를 내놓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옆구리를 끼고 도는 실한 강물과 여문 들과 눈 들어 바라보이는 초가을 나무들만 보아도 넉넉해지는 길이기 때문에 모든 여유로움을 이 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확신한다.

또한 운이 좋으면 머리 위의 감나무에서 홍시가 붉은 벼락을 내려 주기도 할 것이고, 도톰한 열매를 담은 밤송이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족히 시간반은 걸어야 할 그 길은 순창군을 통과하여 전주로 가는 27번 국도 임실군 덕치면에서 한쪽은 회문산 가는 길이 나오는 맞은편에 있다.

맞은편으로 점방이 보이는 옆길을 따라 시멘트 포장길을 따르면 마을 하나가 나오고 마을 끝에서 비포장 길은 시작된다. 마을의 끝자락에서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길은 물을 왼쪽에 두고 취한 이웃집 아저씨가 가는 길처럼 느릿느릿 사행으로 이어져 있다.

직립보행의 존재가치를 거기까지 가서 느껴야 하는 것이 못 마땅하더라도 한번 가볼 일이다. 그 땅과 그 길과 그 아름다운 경관을 수장시키려는 베스와 블루길과 황소개구리 같은 탐욕의 집단이 더 넘보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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