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를 다시 생각하며
소록도를 다시 생각하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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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소록도를 다녀왔다. 5년전 소록도 80주년 무렵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번에는 일본 국회의원들의 방문이 계기가 되었다. 일본에서 최근에 환자들의 강제격리에 대한 배상이 결정되면서 식민지 시기 일제가 행한 한센병 정책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는 반증이다.

소록도는 가볼 때마다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역사의 엄중함을 깨닫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세들에게 심적 부담을 안겨주는 곳이기도 하다. 85년간의 굴곡진 한국 근대사를 소록도만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번 방문에서 함평 출신의 한 할머니 환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분은 집에 숨어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동네사람이 밀고하여 잡혀왔다고 한다. 환자들은 일제의 강제격리조치를 당시의 용어대로 모집이라고 부른다. 그 때 나이 열 여덟, 지금 일흔 여섯이니 무려 58년을 소록도에서 산 셈이다.

자신은 글자를 안 배워서 몇 년도에 입소했는지 모른다고 말했지만 계산해보면, 한꺼번에 그 이와 함께 350명이 강송되어 온 그 해는 1942년이다. 소록도에는 이처럼 식민지 시대부터 살았던 사람이 70-80명이 살아있다. 물론 이름 그대로 한쪽 구석 만령당에는 만명이 넘는 고혼들이 한 무덤에 누워있다.

이번 방문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몇 년전까지 남아있던, 한 때 조선총독이 머물렀다고 하는 구락부 건물, 또는 한달 전까지 남아있던 옛 화장터가 사라지고 없었다는 점이다. 모두 1930년대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병원측의 설명으로는 너무 낡아서 사고날까 두려워 헐었다고 한다.

작년에 한국 한센병 역사의 또 다른 현장인 여수 애양원에 박물관이 세워졌다. 과거 윌슨 선교사가 환자들을 치료했던 병원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것인데, 이 박물관은 획기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박물관의 입구에 애양원의 주인이 환자들임을 선언하고, 현재 생존해있는 이들의 사진을 걸어놓았다는 점 때문이다. 한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자신의 초상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는 것은 그동안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일이다. 그만큼 이제 환자들 스스로가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위상과 의미를 인식했다는 것이다.

소록도의 경우 여전히 국립 병원으로 남아 있지만, 이제 소록도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다. 1940년대 초반에 소록도 갱생원장 수호는 소록도를 현재처럼 확장해놓고 세계 최대의 요양원을 만든 기념으로 일본 나학회를 이 곳에서 열었다. 역설적이지만, 현재의 소록도는 예나 지금이나 국립 병원이지만, 그 자체가 한국 최고의 역사박물관이기도 하다. 이제 소록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즉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 뿐 아니라 건물과 자연, 그리고 이들을 관통하고 있는 역사, 모두를 소중한 민족적 문화자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옛 자혜병원이나 감금실, 해부실 건물들은 사적으로, 식생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들이다. 그 어느 하나 소홀하게 취급되어서는 안되며 관계자의 부주의나 예산부족으로 파괴되어서는 안된다. 역사적 자원의 파괴는 일종의 범죄행위에 속한다.

사실 주무관청인 보건복지부의 의료복지 예산만 가지고는 이 훌륭한 역사박물관을 유지할 수 없다. 문화관광부, 또는 전라남도의 적극적 대책이 필요하다. 말로만 인권복지와 문화관광을 떠들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수립이 절실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이다. 정부나 병원당국만을 탓할 게 아니라 시민들이 구체적 행동으로 돕고 지켜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소록도는 그동안 소리없이 돕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구의 참길회는 그 대표적인 모임이다. 이들은 벌써 이십년 가까이 소록도 환자들을 보살피고, 또 현재의 자료실을 만들도록 도왔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영호남의 지역적 경계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광주에서도, 전남에서도 소록도의 현장을 보존하고 이들이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도록 구체적 행동으로, 그러나 가급적 소리나지 않는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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