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싸가지 없었나
전라도 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싸가지 없었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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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년 전 만해도 전라도 말을 방송에서 만나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나오더라도 범죄자나 하층민의 입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우스개 소리에도 전라도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그 중에는 잘 못 쓰이는 전라도 말이 많아서 오히려 어떤 말이 지닌 본래의 뜻이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방송뿐만이 아니다. 잘못 쓰이는 말들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이유는 한가지이다. 말을 왜곡시킴으로 해서 자극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로 많이 떠돌아다니는 것 중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1. 언덕 위에 하얀 집.
2. 호수 위의 백조.
3.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녀를 사랑할 것입니다.
4. 머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5.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한 번 맞춰 보시라. 대개의 사람들은 아래와 비슷하게 대답을 할 것이다.

1. 깔끄막 우게 흐칸 집.
2. 둠벙 우게 때까우.
3. 살어서도 디저서도 그 가시내를 사랑해분당께.
4. 대가리가 쬐깐 빠개질 것 가튼디, 암시랑토 안당께.
3. 댕기기가 옹삭스러워서 우짜까이.


그러나 이건 잘못된 말이다. 아무리 재미 삼아 사용했다 하더라도, 이렇게 쓰는 것은 의역도 정도를 넘어선 의역이다.

1. 깔끄막은 언덕이 아니라, '비탈'을 뜻한다. 원문이 '비탈 위에 하얀 집'이 아니라, 언덕 위에 하얀 집이었으므로 '어덕 우게 흐칸 집'으로 바꾸어야 한다. 언덕을 전라도에서는 어덕이라고 한다.

2. 둠벙 우게 때까우, 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는 없을 것이다. 호수에 대응하는 사투리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호수를 둠벙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이다. 둠벙의 크기는 연못과 별 차이가 없다. 호수는 전라도에서도 호수라고 한다. 전라도 말이 '사투리'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전라도 말의 대부분은 표준말과 같다. 그래서 '호수 위의 백조'는 '호수 우게 때까우'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

3. 죽는다는 말을 왜 '디진다'로만 바꾸려 하는가? 언제부터 전라도 말이 이렇게 싸가지 없었던가. 누구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도 누구네 함무니가 디졌다, 고 쓸 수 있는가? 디졌다는 말은 분명 죽었다는 뜻을 지니지만, 죽음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또한 '그녀'를 전라도 말로 바꿀 때에 '그 가시내'를 쓰는데, 이것도 잘못 되었다. '가시내'라는 말은 나이 어린 여자, 혹은 허물없는 여자 친구 정도로 쓰는 말이다. 그러므로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녀를 사랑할 것입니다.' 는 말은 '살어서도 죽어서도 그녀럴 사랑할 꺼십니다.' 정도가 옳다.

4. '머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괜찮습니다.'도 마찬가지이다. '머리가 조깐 아프기넌 허지만 괜잔합니다.' 쯤이면 된다. 왜 '머리'가 '대가리' 뿐일 수 있단 말인가? 암시랑토 안 하다는 말은 괜찮다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는 뜻이다.

5. '마찬가지로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는 말은 '통행에 불팬얼 디래서 죄송합니다' 가 되어야 한다.

괜히 재미 삼아 뱉은 말들이 말의 본 뜻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자극적인 표현만이 능사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전라도 말이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자. 전라도 사투리를 찾아내고 사용하는 것은 의미 있을 수 있으나, 어설피 아는 것을 잘못 전하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해치는 폭력일 뿐이다.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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