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향기까지 담고 싶습니다
차의 향기까지 담고 싶습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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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연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

다기 만들며 단순하게 소박하게 사는 사람, 도예가 신진균

노는 것처럼 일하다가 좋은 사람 오면 차 한잔하고, 저녁이면 호롱불을 켜놓고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이가 있다. 차가 좋아 차와 다기를 직접 만드는 사람, 신진균(49)님이다. 동양화가였던 그는 지금 도예가로 살고 있다.

담양군 수북면 개동 마을에 자리잡은 금강도예. 작업장인 이곳은 그가 태어난 집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집이 이제는 일을 하는 곳이 되었다.
8년 전까지 그는 광주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동양화가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차와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 따뜻함에 푹 빠져 차 만드는 곳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다기에 관심을 갖게되고 마침내 도예가로 변신했다. 초기에는 인연이 된 도예가들의 작품에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릇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다가 흙의 매력에 푹 빠졌다. 직접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다기를 만들때면 그 다기로 직접 마시는 생각을 한다. 차의 향기와 마시는 느낌을 떠올린다. 모양만 찻잔이 아닌, 차를 온전히 담아내는 그릇을 만들고자 함이다.

"차의 향기까지 담고 싶어서요"

그릇에 어울리는 그림 그려주던 동양화가
흙의 매력에 푹~ 빠져 도예가로 변신
나누고 일하고 사랑하던 '어머니 삶' 닮고자
나고 자란 유년의 집으로 귀향
오이 고추 가지 콩..그의 다실은 '나눔 장터'



나고 자란 그 집에서 흙을 고르고 반죽하고 불을 떼면서 유년을 떠올린다.

나고 자란 그 집에서 흙을 고르고 반죽하고 불을 떼면서 유년을 떠올린다. 집 구석구석 그의 기억이 머무르지 않은 곳이 없다. 마루를 닦으면서 파인 홈을 보면 까마득한 어린시절 형제들과 놀면서 손끝으로 만졌던 감촉이 되살아난단다. 그 기억과 감성이 지금 삶의 토대가 된다. 마흔 전에는 몰랐단다. 쉰을 바라보는 지금, 40여년 전 모습이 하나씩 떠오른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것이라 할 정도로 크다.

늘 검소하게 소박하게 사시던 어머니. 이웃과 나누고 부지런히, 정갈하게 사시던 어머니. 마을에서 가장 끝집이라 어른 없이 형제들만 놀고 있으면 대낮이어도 무서웠단다. 이럴 때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면 어김없이 들녘에 어머니가 있었다. 늘 흰옷을 입으셨던 어머니. 그 밭을 지금은 마당 안으로 들여놓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 삶에 대한 동경 때문이리라...

그는 늘 나누고 싶어한다. 어린시절, 그의 어머니는 무엇이든 나누며 살았다. 이웃과 친지들과... 각자의 몫을 챙기기에 급급한 현실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빠르고 편리한 세상이지만 일생을 바칠만큼 소중한 가치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세상이 위험하게 느껴졌다. 온 몸으로 거부하고 싶었다. 자신부터라도 나누며 살던 지난 삶을 살고자 어머니와 함께 했던 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어머니가 살았던 삶을 떠올리며 살아간다. 나누고 일하고 사랑하고...

그의 마당은 온통 먹거리로 가득하다. 오이, 고추, 가지, 콩, 수수... 자신이 먹기 위한 것이 아닌, 나누기 위한 것들이다. 그리 손이 많이 가지 않는 꽃들도 있다. 봉숭아, 분꽃... 찾아오는 이들이 고향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역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茶室은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사랑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그에게 꾸준히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그를 오랫동안 알아온 박성일(문화운동가, 50)님은 "그가 있어 담양이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불혹을 넘어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 편리함이 넘쳐나는 세상이 너무도 위험하게 느껴져 이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그 신념으로 살고 있는 사람. 자신이라도 어머니가 살았던 곱디고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 순수함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 지금같이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한길로만 살아가는 사람에게 한 숨 쉬고 다시 생각할 기회를 안겨주지 않을까.

금강도예, 전남 담양군 수북면 개동리 684, 061-382-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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