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사잇길-1kg과 한 무데기의 차이
전라도 말 사잇길-1kg과 한 무데기의 차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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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을 뜻하는 말에도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물건을 살 때마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지 못하기에 대개의 것을 슈퍼에서 구입하게 되는데, 슈퍼에서 사는 물건들은 그 질량이 정확하게(?) 적혀있기 마련이다. 껌이나 과자 같은 것이야 말할 것도 없고, 감자나 쪽파까지도 랩에 싸여 질량이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질량이라는 것이 믿을만한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서구 과학은 대체로 믿을만하다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질량이라는 것은 외부 습도에 의해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물건의 질을 생각하였을 때 문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질량을 정하고, 그 질량에 의지해서 물건을 거래하는 행위와는 다르게, 한 무데기나 한 주먹이라는 단위로 물건이 거래되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에서도 저울이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손으로 노물을 캐와 직접 파는 할머니들은 아직도 한 무데기 단위로 물건을 판다.

그런데 이 무데기라는 것은 일정한 크기가 없고, 가격이 비쌀 때는 자연스레 무데기가 작아지고, 가격이 싼 경우 커진다. 또한 시장이 시작될 때와 파장 무렵은 또 다르다.

이전에는 두 무데기로 나누어도 좋을 량을 파장 무렵에는 한 무데기로 합쳐서 팔기도 한다. 또한 떨이일 때는 같은 돈으로 정상 거래시보다 두 세배의 물건을 살수도 있다.

물건의 질에 따라 가격차가 확실한 것이, 이 무데기 라는 단위로 거래를 하였을 때이다. 바로 옆에 앉아 장사를 하면서도 물건이 좋은 쪽은 물건이 해린 쪽보다 무데기의 크기가 절반이어도 된다.

내가 재래시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건의 질과 량을 확인할 수 있고, 비교 분석이 가능한 곳. 그리고 재래시장에서는 파장과 떨이라는 변수가 적절히 작용한다.

kg이나 ml 등 서구에서 사용되는 질량과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들을 나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서구과학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바로 반문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 무데기나 한 주먹이라는 단위는 믿을만한가? 라고. 나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것의 질량과 부피는 주위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확성을 기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한 무데기나 한 주먹이라는 단위는 이미 그 주변환경이 계산된 단위라고.

물론 나는 서구에서 들어온 kg이나 ml 등의 단위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단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학자들이 분석하려 하였지만, 아직도 세계는 분석되지 않았고, 분석을 통해서 어떤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어찌 이것이 질량과 부피에만 해당되는 문제이겠는가. 생물학이나 물리학, 의학이나 지리학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철학까지도 서구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재래시장에서는 동양 정신의 원형이랄 수 있는, '전체를 한꺼번에 생각 함'이라는 사고방식이 살아있는 것이다.

참고로 전라도 말에서 사용되는, 전체를 한꺼번에 생각하는 단위들의 예를 들고자 한다.

곱 : 홉. 열 홉은 한 되.
애기곱 : 아이 손으로 한 홉. 한 홉도 안 되는 적은 분량. 부러 손을 오무려 잰 홉(인색한 경우를 말할 때 씀).
한 주먹 : 어른 손으로 쉽게 움켜쥘 수 있을만한 분량.
한 조마니 : 주머니 하나에 가득찰 수 있는 량(대략 1홉과 비슷한 량).
한 지게 : 무게로 80kg 정도. 벼 2가마, 쌀 한가마 쯤. (가벼운 물건일 경우) 끈으로 묶을 수 있는 한계치.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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