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정의롭고 관용하여’ 함께 가자(8)
더불어 ‘정의롭고 관용하여’ 함께 가자(8)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7.12.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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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지난 11월 29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는 ‘국내외 합작운동과 오늘의 남북관계’를 조명하는 학술심포지엄을 가졌다. 기념사업회 이부영 회장은 그 개회사에서 “오늘의 한반도는 ‘북핵과 미국의 전쟁위협이 한반도의 숨통을 조여 오는 듯하다. 지난 여름부터 북핵 보유 선언과 미국 전략무기 배치 등으로 조성된 한반도 위기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동아시아 순방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진단하였다. 이어서 “몽양 여운형, 우사 김규식, 민세 안재홍 선생들의 좌우합작, 통일정부 수립운동이 분단정부 수립과 전쟁으로 좌절되었지만 우리의 미래 구상은 그분들의 노력과 성과를 이어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고 다짐하였다.

북핵과 미국의 전쟁위협이 조성한 위기는 대한민국과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어떤 출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을 유발하고 있다. 위기의 심화는 우리들의 생존을 총체적으로 위협하기 때문이다. 해방공간에서의 합작운동은 오늘의 분단사태와 전쟁국면을 예단한 선각자적 운동이었으나, 주객관적인 조건이 착종함으로써 실패하여 민족의 재난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의 전쟁위기의 긴장된 토대를 마련한 셈이었다.

다시는 비극도 위기도 없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에 지난 시간의 합작운동사를 반추하게 되는데, 필자는 민세 안재홍의 합작운동을 살펴보고자 한다.

심포지움에서 김기협 교수는 민세 안재홍의 좌우합작 구상을 신민족주의의 한계와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피고 있는데, 필자는 김교수의 주장을 참고하면서 1925년 초부터 시작된 그의 민공연합의 민족협동전선이 해방공간에서 제기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로 이어지고 있음을 살핀다.

안재홍은 민족개량주의 세력이 사회주의운동을 적대하는 것과 달리 사회주의운동이 등장한 상황을 ‘필연 또는 당연한 형세’라고 공감하고 있었는데, 러시아혁명 이후의 아시아 식민지 독립운동을 개관하면, 그러한 판단은 옳았다고 할 것이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몽양 여운형과 그 정치적 행보를 같이 하였는데, 민족주의 주도권 아래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건준 안에서 ‘민공협동’함으로써 과도정권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민족주의자가 영도하는 통합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하였다. 그런데 건준을 좌익이 주도하여 전국 인민대표자회의를 열고, 조선인민공화국 임시조직법안을 통과시켜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여 건국준비위원회는 자동 해소되고 말았다. 안재홍은 건준에서 퇴각하여 신민족주의를 표방 제시하면서, 민족주의 정당인 조선국민당을 창당하였다.

그의 신민족주의는 신민주주의를 내포하면서 초계급적 통합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계급 이전에 이미 민족이 있었고 일본에 의해 식민화되는 과정도 민족이 총체적으로 식민화되어, 비 오는 날 모두가 비에 노출되는 것에 비유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구 민족주의의 부르조아 성격을 초계급적 통합민족국가를 통해 계급대립, 계급투쟁을 지양할 수 있어 극좌의 무산계급 독재와 극우파쇼의 부르주아 계급독재를 부정하여 노자협조를 통한 계급통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민족주의, 공산주의 이념으로 민족 내부의 모든 계급대립을 해소하고 경제균등을 바탕으로 제반 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일찍이 정약용을 사회민주주의자로 규정한 바 있는데, 그의 신민족주의의 이념 정형을 사회민주주의로 설정하였다. 아울러 “균등사회의 토대 위에 대중적 정치평등의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신민주주의”라고 정식화하였는데, 이러한 이념을 제도로 입법화함으로써 대지주, 대자본가의 독점을 예방하고 민중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경제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다.

안재홍은 민족주의자답게 해방정국의 현실에서는 중경임시정부를 보강 확충함으로써 건국정부로 발전시키자는 것이 그의 건국방침이었다. 이어 1946년 7월 들어 좌우합작을 적극 지지, 합작이론을 체계화하였다. 좌우합작을 성사시켜 정치세력의 자주력을 기반으로 삼아 미군정과 합작을 통해 군정을 이양 받아 남한의 자주 행정권을 획득하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인민위원회와 협상하여 남북통일정부를 수립하려 하였다. 몽양 여운형이 좌익의 합작주의자이고 우사 김규식이 임정파의 합작주의자라면, 민세 안재홍은 국내 민족주의 세력의 합작파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인간의 욕망과 관계된 제 세력들의 힘에 의해서 규정되고 말았는데, 해방정국은 냉전 초입으로 국내 정치세력이 미소의 세계전략에 연동, 편승함으로써 한민족의 골든타임은 무산되기에 이르렀고, 좌우합작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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