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서슬 퍼런 썰전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서슬 퍼런 썰전
  • 김영주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7.10.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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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조선시대 인조시절의 병자호란을 소재로 삼고 있다. 영화 제목이 [남한산성]인 것은 그 시나리오가 김훈의 소설[남한산성]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란다. 난 소설[남한산성]을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남한산성]에 관련된 내용은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런 역사적 사건에 반드시 팩트가 있겠지만, 그 사건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그걸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수없이 다양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만든 작품을 이야기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게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일까?”를 가려내는 것이다. 이걸 정확하게 알아야 작가의 관점과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한 경우가 많아서, 팩트와 픽션을 가려낸다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2000년에 들어서서 팩트와 픽션이 뒤엉킨 ‘팩션’이 워낙 유행을 타면서, 픽션이 지나치게 설친다. “팩트를 그토록 뒤틀어버리고선, 그걸 ‘표현의 자유’라는 그늘 속으로 숨어버린다.”

인터넷 영화마당에서 다시 예고편을 보면서, 영화 전체를 되새김질해 보았다. 그렇다. 이 영화를 겉으로 보기엔 최명길의 협상파와 김상헌의 강경파가 세치 혓바닥의 서슬 퍼런 칼날을 휘날리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맞서 싸우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속으론 감독이 김상헌 쪽에 서서 영화의 모든 걸 짜 맞추어 가고 있다. 과장하자면 최명길(이병헌)마저도 김상헌을 돋보이게 하려는 조연이나 페이스-메이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① 이 영화가 냉혈한 김윤석으로 시작하여 따뜻한 김윤석으로 끝난다. ② 중요한 조연들(특히 대장장이)이 김윤성의 캐릭터를 미화하는 역할을 한다. ③ 김윤석은 보수파의 실세이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보수파 벼슬아치는 저질이다. 그 저질들은 그를 더욱 훌륭한 ‘보수파’사람으로 돋보이도록 만든다. ④ 그의 자살 실패가 찌질하게 못난 사례로 오늘날 역사학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장렬하게 자결’하는 모습으로 드높여서 그려낸다. 이걸로 미루어 보건데, 이 감독은 ‘참다운 노블레스 오블리제’하는 ‘참다운 보수세력’을 목마르게 갈망하는 듯하다.

나는 이 감독의 관점을 ‘보수파’로 보아야할지 ‘민주파’로 보아야할지 고민스럽다. 그의 다른 작품[수상한 그녀]를 ‘보수파’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일단 그를 ‘보수파’감독으로 분류하겠다. 전쟁장면을 만드는 기술과 내공이 조금 약하다. 제작비가 부족했을까? 우리나라에 보수파 감독 중에서 내공을 잘 갖춘 감독을 만나기 참 어렵다. 우리나라 보수는 돈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런 감독의 작품에 돈 좀 써라! 매갑시 어버이연합이나 국정원에 “밑빠진 도가지에 물붓는 짓” 그만 두고, 짜잔하게시리 ‘블랙리스트’나 음습하게 만들다가 들통 나지 말고, · · · . * 대중재미 B0,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보수파 A0.

이 영화에 제대로 빨려든 관객들은 주저없이 “아! 김윤석! 멋있네~!”를 먼저 내뱉은 뒤에 “역시 이병헌도 . . .”라고 찬탄하거나, 김윤석과 이병헌을 함께 찬탄하면서도 그 중심은 김윤석의 매력에 쏠려든 짤막한 멘트를 날릴 것이다. 조선시대의 역사에 자기 나름대로 얼마쯤의 노가리를 풀어낼 줄 아는 논객(?)은, 안동 김씨의 폐단이나 성리학의 근본주의적 성향에 염증 또는 사색당쟁에서 노론의 오래 묵은 패악질 · · · 을 주절거리며 이 영화에 약간 씨니컬한 비아냥을 토해낼 것이다. 이게 모두, 감독이 겉으론 은근하면서도 속으론 노골적으로 김윤석을 미화하는 연출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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